“아들아, 우린 오늘도 살아남았다” 러軍 포격속 엄마의 메시지[사람,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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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아파트에 23일간 갇혀
‘안네의 일기’ 쓰듯 아들에 상황 알려
탈출 뒤 문자메시지 아들에 전송돼

우크라이나 남성 올레그 콥체우가 21일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어머니의 문자메시지. 올레그 콥체우 인스타그램 캡처
우크라이나 남성 올레그 콥체우가 21일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어머니의 문자메시지. 올레그 콥체우 인스타그램 캡처
이날도 휴대전화에는 안테나 신호가 뜨지 않았다. 거실에서 숨죽인 채 있는 남편 옆에서 여성은 문자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다른 도시에 있는 아들에게 문자메시지가 전송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 가족은 러시아군에 포위된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아파트에 2주째 갇혀 있었다. 창 너머 하늘로 러시아군 폭격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다녔다.

▽3월 4일=아들아, 우리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밤새 폭격으로 잠을 못 잤단다. 이틀 전부터 물과 전기가 끊겼는데 너를 생각하며 버티고 있어. 너 혼자 두고 죽을까 봐 무섭다.

▽3월 7일=우리 집 근처에 러시아 군인들이 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했어. 물이 동나서 요리를 못하고 있어. 무서워서 1층 화장실도 못 가고 있단다.

▽3월 8일=어제는 물을 구하러 나갔는데 결국 구하지 못했어. 어떤 남자는 프라이팬으로 웅덩이의 물을 떠먹고 있더구나.

▽3월 9일=
근처 9층짜리 건물이 폭격을 받아서 네 아빠와 할머니, 우리 딸 모두 지하로 대피했단다. 지하는 너무 춥구나.

▽3월 13일=
어제는 우체국 건물이 반으로 갈라지며 무너졌어. 보고 싶다, 아들아.

▽3월 17일=며칠간 연락이 없어 걱정이 많았지. 우리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어. 이제 멀쩡히 서 있는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고 도시 전체가 불길에 뒤덮인 것 같구나.

이 가족은 마리우폴에 갇힌 지 23일 만인 18일 다른 도시로 탈출했다고 현지 매체가 전했다. 어머니가 ‘안네의 일기’를 쓰듯 휴대전화에 써 놓은 문자메시지도 뒤늦게 아들 올레그 콥체우(20)에게 전송됐다. 아들이 문자메시지 전문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부모님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지옥에서 벗어나길 기도한다’는 등의 댓글 3000여 개가 달렸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우크라이나#마리우폴#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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