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24년만에 디폴트 임박…오늘 1억달러 이자 만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6일 13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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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루블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2.3.15/뉴스1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루블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2.3.15/뉴스1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이 임박했다. 러시아는 16일(현지 시간) 1억1700만 달러 규모의 국채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데, 지급에 실패하면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진다. 1998년 금융위기 때 이후 24년 만이다.

블룸버그통신과 CNBC방송 등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이날 만기가 돌아 온 국채 이자를 자국 루블화나 중국 위안화로 지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외환보유고의 절반 가까이가 서방의 제재로 해외에 묶여 있어서 사용 가능한 외화가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 금융계는 달러 표시 채권의 이자를 달러화가 아닌 루블화로 지급하면 디폴트로 간주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자를 달러화로 지급하지 못할 경우는 디폴트를 의미한다”고 전날 밝혔다. CNBC방송도 시장 전문가들을 인용해 “일부 러시아 채권은 루블화 지급이 가능하지만 이번에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루블화 이자 지급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루블화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축통화가 아닌 데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루블화의 가치가 40% 이상 폭락하는 등 부침이 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채 투자자들이 러시아 은행을 통해 루블화로 이자를 받는다 해도 서방의 금융 제재로 이를 수령할 수조차 없다.

결국 달러화가 바닥난 러시아는 이날 국채 이자 지급에 실패해 사실상 디폴트에 빠질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대체적인 예상이다. 다만 이자 지급에는 30일 간의 유예 기간이 있기 때문에 공식 디폴트는 4월 중순에 선언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 정부와 기업이 지고 있는 외화 부채는 총 1500억 달러에 이른다.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 기간이던 1917년과 금융위기 당시인 1998년 디폴트를 겪은 바 있다.

러시아의 디폴트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단 러시아에 빌려준 돈이 많은 유럽 은행들이 여신 회수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또 기초체력이 좋지 않은 신흥국 경제에도 연쇄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신용 경색에 대한 불안감에 금융회사들이 리스크가 높은 신흥시장에서 자금을 빼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1998년 당시에도 러시아의 디폴트가 미국 헤지펀드사인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중앙은행이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구제금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러시아 등 신흥시장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다.

다만 러시아의 채무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고 러시아 경제와 글로벌 시장과 연계성이 높지 않아 위기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제금융협회(IIF)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외 채무는 크림반도 강제 병합 때인 2014년에 비해 현격히 감소했다. 특히 정부의 채무액도 400억 달러에 불과하고 외국 은행들의 러시아 위험 노출액(익스포저) 역시 1210억 달러로 비교적 적은 편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역시 최근 방송에서 이 상황이 전 세계에 금융위기를 촉발시킬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아니다”고 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금까지 규제 당국자들은 러시아 디폴트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전체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러시아의 고립에 따른 에너지 및 식료품 가격 상승이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 역시 “투자 분석가들은 이번 러시아의 디폴트가 1998년의 충격을 몰고 오지는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한다”며 “2014년 서방의 제재 이후 투자자와 기업들이 러시아에 대한 투자를 줄여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충격은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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