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문학의 산실 ‘시티 라이츠’ 세운 로런스 펄렝게티 별세…향년 102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4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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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만들어진 시티 라이츠 서점
195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만들어진 시티 라이츠 서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군국주의, 물질주의, 성적 억압에 반대하는 ‘비트 세대’의 문화를 태동시킨 서점 ‘시티 라이츠’(City Lights)를 세운 시인 로런스 펄렝게티가 22일(현지시간) 자택에서 폐 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2세.

뉴욕타임스(NYT)가 ‘비트세대의 정신적 대부’라고 표현한 펄렝게티는 1956년 앨런 긴즈버그의 시집 ‘울부짖음’(Howl)을 출간하며 세계 문화사의 중요한 사건을 기록했다.

같은 해 갤러리에서 긴즈버그가 ‘울부짖음’을 낭독하는 모습을 본 펄렝게티는 다음날 바로 긴즈버그에게 전보를 보낸다.

“훌륭한 커리어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시의 원고를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미국 서부 보헤미안과 비트 문화의 산실 ‘시티 라이츠’를 세운 시인 로렌스 펄렝게티
미국 서부 보헤미안과 비트 문화의 산실 ‘시티 라이츠’를 세운 시인 로렌스 펄렝게티

‘시티 라이츠’ 서점에서 출판사도 운영했던 펄렝게티는 결국 긴즈버그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러나 이듬해 외설 출판 혐의로 긴즈버그와 함께 체포돼 법정에 선다. 당시 심경에 대해 펄렝게티는 가디언에 “당시 나는 어렸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며 “평생 가둬두진 않을 테니 감옥에서 책을 실컷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슈가 되자 증언대에 수많은 서부의 문학인들이, 길에서는 독자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법원은 “사회적 중요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책을 선정적이라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다. 이는 수정헌법 1조에 관한 역사적 판결 중 하나로 꼽히며, 이 재판 후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작품도 출간될 수 있었다. ‘울부짖음’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시가 됐고, 시티 라이츠 서점은 ‘예술의 자유’를 상징하는 곳이 됐다.

시티 라이츠는 문학계에서 천대를 받았던 페이퍼백을 주로 판매한 서점이기도 하다. 또 긴즈버그는 물론 소설가 잭 케루악 등 기성 서점에서 잘 볼 수 없었던 비트세대 문학가들의 작품을 출간했다. 당시 서점으로서는 드물게 주말과 심야에도 영업해, 급진적인 문화 인사들이 교류하는 산실이 됐다.

1919년 뉴욕에서 태어난 펄렝게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복무하고, 프랑스 파리 소르본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1958년에 출간한 시집 ‘마음 속 코니 아일랜드’는 전세계 100만 권 이상 판매될 정도로 사랑 받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서점에 머물며, 자신을 찾아온 전 세계 문학 마니아들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었다. 2019년 샌프란시스코시는 그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3월 24일을 ‘로렌스 펠렝게티의 날’로 선정하고 한 달 내내 축제를 열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당시 스스로의 삶에 대해 자랑스럽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네요. ‘자랑스럽다’는 말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요. ‘행복했다’가 더 적절한 단어겠어요. 물론 ‘행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슨 뜻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정말 골치 아파지겠죠.”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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