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 주도로 결성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강하게 견제하고 나서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중국과의 주도권 싸움을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고립주의의 길을 택한 사이에 한국과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무역 협정인 RCEP을 만들었다. 이에 바이든 당선인이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한 것은 사실상 RCEP에 대항해 전통 우방국을 중심으로 반중(反中) 세력을 다시 규합해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국은 이처럼 기싸움을 하는 미중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16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우리 친구의 눈을 손으로 찌르면서 독재자를 포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우방국들과는 무역·외교 마찰을 일으키면서 러시아 북한 등 적대국 지도자와는 친밀하게 지낸 점을 재차 비판한 것. 한국 일본 등 기존 동맹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동맹국들을 새로운 경제 블록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는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바이든 당선인의 기조와 맥이 닿아 있다.
그는 무역 정책과 관련해서는 “세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이라며 △미국 노동자에게 투자하고 그들을 더 경쟁력 있게 만들 것 △무역합의를 할 때 노동자와 환경보호론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분명히 포함될 것 △징벌적 무역을 추구하지 않을 것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관심은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 여부로 쏠리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TPP를 주도적으로 결성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사흘 만에 탈퇴한 바 있다. 미국이 TPP에 다시 복귀한다면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며 RCEP을 단번에 뛰어넘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 탄생한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해 민주당 경선 토론에서도 “규칙을 우리가 정하지 않으면 중국이 할 것”이라며 무역 조건을 다시 협상해 TPP에 재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는 “중국이 아닌 미국이 규칙을 만들겠다”는 16일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미국이 TPP에 다시 복귀한다면 한국에 동참을 요구하는 것은 시간문제란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도 관련 외교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의 반대가 예상되는 만큼 해법을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17일 미국 내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 편을 들기 위해 한미 관계를 경시한다면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만약 한국이 미국과 관계를 훼손하면서 대중 관계를 강화한다면, 자유 독립국인 한국의 미래에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미군은 한국에서 철수할 경우 절대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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