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공무원 면책권’이 美경찰 만행 불러?…“유색인종 탄압 수단 변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31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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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 상태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미국인이 속출하는데도 비슷한 사태가 끊이지 않는 이면에 과도한 ‘공무원 면책권’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총기 소유가 허용되고 적은 수의 공권력이 광대한 국토를 담당하며, ‘변호사 천국’으로 불릴 만큼 각종 소송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만들어졌지만 도입 취지와 달리 유색인종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1967년 “선의로 법을 위반한 공무원은 면책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처음 판시했다. 2015년에는 “상식적인 사람이 알 만큼 명확하게 수립된 법 및 헌법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공무 중 행위와 관련해 기소되지 않을 권리”라고 해석했다.

이 ‘명확하게 수립된(clearly established)’ 권리란 표현이 경찰의 면죄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USA투데이는 지난달 25일 비무장 상태에서 백인 경찰 데릭 쇼빈(44)의 강압 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46) 사건을 거론하며 “미 경찰들은 면책권 덕분에 법이 자신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듯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최초의 히스패닉계 대법관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역시 “경찰에게 완벽한 보호막이 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사람을 인구 100만 명당 비율로 따지면 흑인이 30명으로 가장 많다. 백인(12명)의 2.5배다. 2009~2010년 미 경찰 비위 3238건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소된 경찰관 중 유죄를 선고받는 사람은 33%에 불과하고, 이 중 36%만 실형을 살았다. 각각 같은 기간 일반인의 유죄 및 실형 선고 비율의 절반에 불과하다.

면책권은 2014년 비무장 상태에서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뉴욕 흑인 남성 에릭 가너 사건에서도 논란이었다. 당시 경찰은 천식 환자였던 가너가 “숨을 못 쉬겠다”고 외쳤는데도 목조르기를 풀지 않았다. 이 경찰은 5년이 흐른 2019년에야 파면됐다. 검찰은 “법을 어겼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대법원은 2013년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불법 도박장 운영 혐의를 받는 피의자들의 집을 수색하다 22만 달러(약 2억7000만 원)를 빼돌린 경찰들에게 ‘명백한 법률이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2004년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과속한 7개월 흑인 임산부에게 테이저건을 쏜 경찰 역시 “명백한 법률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플로이드 사망에 연관된 쇼빈 경관은 이례적으로 사건 발생 직후 3급 살인죄로 기소됐다. 19년간 경찰로 근무한 그는 플로이드 사건 외에도 최소 2차례 동안 용의자를 총으로 쐈고 이중 한 명은 숨졌다. 또한 쇼빈 경관은 근태 불량, 과도한 공권력 행사까지 총 17차례 고소 및 고발을 당했으나 불과 1차례 견책을 받았을 뿐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가 면책권을 통해 가벼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직 경찰서장은 “19년 근무기간 동안 1년에 1번꼴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1차 부검 결과 플로이드의 직접 사인(死因)이 경찰관의 제압으로 인한 교살 및 질식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쇼빈 경관에게 제기된 살인 혐의를 희석시킬 수 있어 유가족과 흑인 시민단체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향후 재판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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