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이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실패할 경우 북한이 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다나카 히토시(田中均·71·사진) 전 일본 외무성 심의관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런 역설적인 이유로 북-미 회담의 성공을 점쳤다.
“1990년대 이래 북한 비핵화를 위한 많은 노력과 좌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세계의 기대감이 고조된 적은 없습니다. 만일 ‘이번에도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한반도 주변 상황은 평창 올림픽 이전보다 더 나빠질 겁니다. 그 부담은 오롯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짊어져야 합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상반되는 대북 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2002년 9월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으로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방북과 평양선언을 이끌어내며 대북 외교사에서 양국이 가장 가까워졌던 상황을 진두지휘했다. 평양선언 직전 1년간 북한의 일명 ‘미스터X’와 중국 각지에서 25회 비밀 교섭을 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평양을 설득해 6자회담의 틀을 만든 공로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일 국교정상화는 결국 진전되지 못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북-일 국교정상화를 포기한 뒤 2005년 8월 그는 ‘매국노’라는 비판을 들으며 외무성을 떠나야 했다.
-북-미 회담이 성공한다면 CVID는 이뤄진다고 보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단계적 비핵화를 수용하는 듯한 분위기다.
“리비아식 모델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북한과 리비아의 핵개발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도 미국이 체제보장 및 보상을 제대로 해줄지 우려하고 있다. 단계적인 보상을 통해 북한의 이러한 불안감을 조금씩 해소시켜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의도에 국제사회가 말려드는 것 아닌가.
“단계적이라 해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묶는데 성공한다면 효과는 마찬가지다. 다만 북한이 먼저 구체적 행동을 보여야 한다. 최소한 모든 핵시설을 신고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해야 한다. 비핵화는 아주 긴 여정이 될 것이다.”
그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상호신뢰를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2년 평양선언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얼굴을 붉히며 ‘미국은 믿을 수가 없다’며 화를 내던 모습이 지금도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2002년 이래 시도됐던 북-일 국교정상화가 납치문제 때문에 좌절했다고 흔히 지적되지만 더 큰 요인이 있습니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정권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데 6자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와중에 ‘방코 델타 아시아(BDA)’ 계좌동결조치에 나섰습니다. 일본으로서는 최대 동맹국인 미국이 북한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북-미 회담 추진 과정에서 소위 ‘재팬 패싱’이 자주 거론된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누가 주도하건 결과가 일본 국익에 맞는다면 좋은 일 아닌가. 추후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은 커질 것이다. 또 북-미 양국간에 국교정상화를 향한 조짐이 보이면 일본도 북-일 국교정상화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일본은 북한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납치문제와 같은 주권과 관련된 문제를 한국 혹은 미국에 부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최대한의 대북 압력’을 주창해온 아베 정권이 그게 가능한가.
“정치가란 본래 그런 것 아닌가. 드디어 ‘최대한의 압박’만 말해온 아베 총리 스스로의 입으로 ‘평양선언 정신에 입각한 국교 정상화’를 말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반갑다. 일본 정부는 몇 번을 좌절한 뒤 다시 2002년 우리가 그렸던 지점으로 돌아왔다.”
그는 여러 차례 “한반도 문제는 큰 그림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 분단에는 일본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드는데 일본이 공헌해야 한다”고도 했다.
-북일 국교정상화 후 이뤄질 경제지원에 대해 2002년 당시 100억 달러 규모를 준비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이번에는….
“북한과 보상 금액에 대한 구체적인 협상은 없었다. 평양선언에는 경제협력, 차관 등의 개념만 담았다. 당시 북측 강석주 부상이 윗선에 보고해야 하니 액수를 특정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강석주 부상이 100억 달러 정도의 액수라는 식으로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했다는 풍문은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아주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P3C가 중요하다. 국제사회의 대북압력(pressure)이 있는 가운데 관계국간의 조율(coordination), 비상 상황에 대한 대책(contingency plan), 북한과의 대화 채널(communication channel)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담보할 틀은 6자회담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사안은 결국 6자회담의 틀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문제를 남북, 혹은 미국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다. 6자회담의 틀은 2002년 일본이 주도적으로 평양을 설득해 만들어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일본도, 한국도 배제돼 있다가 나중에 부담만 져야 했습니다. 그런 식은 곤란하지 않은가요. 한반도 평화는 주변국에도 중요한 문제다. 함께 논의하며 연계하며 풀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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