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못 쓴다” 초고령 일본, 개인도 기업도 돈 쌓아두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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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3월 20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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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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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가 불안하니 돈을 쓸 수가 없다.”

초고령 사회에 인구마저 줄기 시작한 일본에서는 개인도 기업도 현금을 움켜쥐고만 있으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돈이란 투자가 이뤄지고, 돌고 돌며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법인데 일본에서는 장롱 속 혹은 은행 예금 형태로 고이 보존되는 현금이 늘고 있는 것이다. 돈의 순환이 막히면 경제의 선순환을 막게 된다.

19일 일본은행이 발표한 2017년 3/4분기(10~12월기)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개인들이 보유한 현금·예금은 전년 대비 2.5% 늘어난 961조 엔(9706조 원)으로 나타났다. 종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중 장롱 속에 보관된 현금은 88조 엔을 차지했다. 주식이나 보험 연금 등을 더한 개인 금융자산 총액은 1880조 엔(지난해 12월말 기준)으로 이 또한 과거 최고치였다. 결국 개인금융자산의 51.1%, 즉 절반 이상이 현금이나 예금이란 얘기가 된다.

요미우리신문은 돈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실적이 좋은 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20일 지적했다. 일본은행 통계에 따르면 금융기관을 제외한 일본의 민간기업이 보유한 ‘현금 및 예금’은 전년 대비 5.2% 늘어난 257조 엔으로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이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디플레이션 심리’도 관련이 있다. 개인은 연금 등 사회보장에 대한 불안 탓에, 기업은 인구감소로 일본시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탓에 과감한 투자에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인들이 체험한 1990년대 버블붕괴는 ‘믿을 건 현금밖에 없다’는 생각을 강화시켰다. 오르기만 하던 주가가 폭락하고 부동산 가격이 붕괴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1월 도입된 마이너스 금리도 은행예금보다는 현금보유를 선호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돈을 은행에 맡겨도 이자가 거의 붙지 않으니 개인 금고 등을 구입해 집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주민번호 등록제도와 유사한 ‘마이넘버 제도’가 도입되면서 자신의 자산 정보가 정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개인들이 현금보유를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초저금리로 수익환경이 악화한 금융기관들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자산운용 상담 창구를 여는 등 투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인들의 현금 지향을 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문은 “일본 경제가 장기적으로도 성장을 계속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국내투자는 활발해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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