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31>‘마쵸형 정치인’의 최우선 조건은 팔꿈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3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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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젊은 시절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He had sharp elbows as well.” (그는 날카로운 팔꿈치도 갖고 있었다)

올 5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린 부고 기사 중 일부입니다. 누구의 부고 기사인지 궁금하시죠? 발음도 어려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이 독특한 미국 정치가’ 정도로 알려졌지만 미국에서는 정치학계의 ‘거두’ ‘거성’이라고 불리죠. 하버드대에서 배운 정치학 이론으로 무장하고 실물 정치에 뛰어들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까지 지내며 중동 평화협상, 중국 수교, 구 소련 견제 등에서 업적을 거뒀죠.

브레진스키의 가장 큰 특징은 날카로운 눈빛입니다.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에서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penetrating eyes)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브레진스키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날카로운 눈빛에 주눅이 들 지경이었죠.

브레진스키의 또 다른 특징은 매우 공격적이고 야망 있는 정치가였다는 겁니다. 뒤로 물러나 있지 않고 앞으로 나와 일을 벌이고, 또 벌려 놓은 일에 대해 확실히 책임을 지는 타입입니다. 학계 출신의 정치가들이 주로 소극적인데 반해 브레진스키는 튀는 스타일이었죠.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 나는 미국 정치판에서 인정받으려면 남을 밀치고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남을 밀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팔꿈치로 밀어버려야 합니다. 팔꿈치는 팔을 구부리는 용도도 있지만 남을 밀칠 때도 사용 가능합니다. 영어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훨씬 많이 쓰이죠. 미국에선 정치인에 대해 ‘He is a politician with elbows’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그는 (경쟁자를 밀쳐 버릴 수 있는) 공격적인 정치가’라는 의미죠.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절 경재자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절 경재자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

브레진스키는 그냥 팔꿈치도 아니라 ‘날카로운 팔꿈치’를 가졌으니 무수히 많은 경쟁자를 밀쳐 버릴 수 있었겠죠.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사이러스 밴스는 사사건건 대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브레진스키는 국무장관의 영역까지 침범해가면서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했고, 뒤로 밀려난 밴스 국무장관은 결국 사임했죠.

경쟁자를 밀쳐버리고 앞에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치인. 왠지 야비해 보이지만 사실 정치인은 그래야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닐지요.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과거에는 ‘팔꿈치를 가진 정치인’이라는 말이 전혀 칭찬이 아니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팔꿈치가 없는 정치인’이 무시당한다고 합니다. 팔꿈치가 없으면 원칙도 없다는 거죠. 요즘 각광 받는 ‘마쵸형 정치인’이 되려면 최우선 조건은 팔꿈치가 있어야 합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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