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3450억원 쓰고도 고작 3명… ‘킬링필드’ 초라한 단죄

  • 동아일보

2006년 시작 캄보디아전범재판소
‘크메르루주 전력’ 현정부 반발로… 학살 가담자들 추가 기소도 난망
일각선 “국민에 정의 개념 심어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의 ‘킬링필드’ 단죄가 미진한 결말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2006년 시작돼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캄보디아전범재판소(ECCC)가 3억 달러(약 3450억 원)를 쓰고도 세 명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는 데 그쳤다며 추가적인 사법조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크메르루주 정권은 1975∼1979년 집권 기간에 170만 명을 학살했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수년간의 협상 끝에 설치한 재판소는 2006년 크메르루주 정권의 핵심 인물 세 명을 법의 심판대 위에 세웠다. 악명 높았던 투올슬렝 수용소장을 지낸 카잉 구에크 에아브(74)는 2014년 최종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90)과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85)은 지난해 11월 역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정권 1인자 폴 포트는 전범재판소가 설치되기 전인 1998년에 숨졌다.

NYT는 전범재판소 실적이 부진한 데에는 캄보디아와 유엔 출신의 재판관으로 이뤄진 ‘혼합형’ 재판소의 성격과 더불어 캄보디아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를 ‘어색한 혼합 형태’라고 분석하며 “국제법 기준으로 법정이 운영돼야 함에도 캄보디아 측이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재판의 범위를 둘러싼 충돌이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재판소는 현재 수사 중인 학살 가담자들에 대한 추가 기소를 준비하고 있지만 훈 센 캄보디아 총리는 과거 크메르루주에 몸담고 있었던 전력을 우려해서인지 “추가 기소는 내전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재판소의 활동을 막고 있다. 이에 반발해 유엔 측 재판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독일 출신의 지크프리트 블룽크 재판관은 캄보디아 정부가 정치적으로 재판에 개입하고 있다며 2011년 재판관직을 던졌다. 2012년엔 스위스 출신의 로랑 카스퍼앙세르메 재판관도 “끔찍한 (재판소의) 기능 장애”를 이유로 들며 사임했다.

알렉산더 힌턴 럿거스대 인류학 교수는 “시작부터 캄보디아 정부는 (과거 청산의) 범위에 대해 (국제사회와) 매우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결국 (캄보디아 정부가) 승리했고 추가적인 법적 조치가 없을 경우 이 재판소는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긍정적 평가도 있다. 필립 샌즈 런던대 국제재판소연구소장은 NYT에 “(재판에) 들어간 비용과 유죄 선고 수만 봐서는 안 된다”며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재판소가 정의에 대한 개념을 캄보디아 대중의 의식 속에 심는 데 얼마만큼 성공했느냐이다”라고 말해 전범재판이 사회적 환기 효과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캄보디아#킬링필드#크메르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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