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코스비엔 화려한 조명… ‘첫 흑인대통령’ 오바마는 홀대

  • 동아일보

9월 개관 美 워싱턴 국립 흑인박물관 전시계획 논란

9월에 문을 여는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아프리칸-아메리칸 역사문화박물관(흑인박물관)’의 전시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7일 보도했다.

성폭행 혐의로 고소된 흑인 스타 코미디언 빌 코스비(79)가 특별전시 무대에 올라 피해 여성들이 반발하고 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현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언급해 균형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비는 1980, 90년대 인기 시트콤인 ‘더 코스비 쇼’에서 따뜻한 아버지 연기를 선보였고,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해 ‘국민 아빠’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슈퍼모델 출신인 재니스 디킨슨을 포함해 여성 46명이 코스비를 성폭행 또는 성추행 혐의로 고소하면서 그의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쳤다.

흑인박물관은 유명 연예인 특별전시 코너 ‘무대 위에 오르다’에서 방송계를 개척한 대표적인 흑인 연예인으로 코스비를 소개하기로 했다. 이곳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TV쇼(더 코스비 쇼)’란 문구와 함께 코스비의 방송 활동과 관련된 책과 영상물, 후원활동 기록 등이 전시된다. 캐슬린 켄드릭 큐레이터는 “20세기 흑인 방송인 가운데 코스비만큼 큰 영향을 남긴 사람을 찾기 힘들다”며 “코스비가 미국 연예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성폭행 혐의와는 별도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코스비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크리스티나 룰리 씨는 “코스비가 흑인박물관에서 기념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의 성과를 소개한다면 혐의도 언급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전시 비중이 낮은 것도 논란거리다. 오바마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2000∼2015년 발생한 주요 변화 부문에 달랑 진열장 한 개로 전시된다. 로니 번치 3세 흑인박물관장은 “시카고에 설립될 예정인 ‘오바마 대통령 도서관’에서 충분히 다룰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선 소개만 했다”고 설명했다. 또 미셸 윌킨슨 큐레이터는 “오바마 대통령 퇴임 후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음 흑인 대통령에 대해 생각하고, 또 다른 흑인 대통령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생각하게 하려는 시도”라며 짧게 소개한 이유를 댔다.

그러나 국민 세금으로 지어지는 박물관인데 현직 대통령을 너무 홀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백악관에서 지근거리로 미국 수도 한복판에 세워지는 흑인박물관은 워싱턴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자연사박물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명소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측은 이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노예제도 당시의 참상과 흑백분리 정책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처참하게 숨진 모습 등을 어느 정도 수위로 보여줘야 하느냐를 놓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흑인박물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상원의원(일리노이) 시절인 2003년 건립이 결정됐다. 총 5억4000만 달러(약 6300억 원)가 들어가는 건립비용 중 절반은 연방기금, 나머지는 민간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흑인 역사와 관련한 수장품 규모는 3만5000점이며, 이 중 약 3000점을 전시한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흑인박물관#코스비#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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