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정훈]트럼프 인정하고 이젠 해법 찾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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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트럼프 현상’을 이해하는 건 짜증나는 일이다. 정치공학에 익숙한 기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미국인도 고개를 젓기는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말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트럼프를….”

그런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 7분 능선을 넘었다. 5일 치러진 공화당 경선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게 한 방 맞았지만 15일 ‘미니 슈퍼 화요일’에서만 승리하면 트럼프 대세론을 꺾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를 ‘막말 사기꾼’이라고 부르는 당 지도부는 중재 전당대회를 열어 다른 후보를 지명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슈퍼 화요일’인 1일 기자는 버지니아 주의 매클린 고등학교에서 1시간가량 유권자들을 인터뷰했다. 희한한 건 “트럼프를 찍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그날은 트럼프가 버지니아에서 가장 많은 34%를 득표한 날이었다. 인터뷰를 거절했던 한 백인 중년 여성은 차를 몰고 다가와 “왜 한국에서 트럼프에 관심을 갖느냐”며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10개가 넘는 질문에 답을 해줬지만 “트럼프를 찍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비밀”이라며 답을 주지 않았다.

지난달 1일 아이오와 주 코커스 현장에서도 의아한 일이 있었다. 투표에 앞서 특정 후보 지지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에 트럼프 지지자라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사회자가 한 번 더 부른 뒤에야 한 백인 남성이 멋쩍게 나섰다.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되는 지도자를 공개적으로 칭찬할 용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국 대선에서 허경영 지지자들이 당당할 수 있었던 건 허 씨의 기행(奇行)을 다큐가 아닌 예능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트럼프 유세장에는 늘 ‘침묵하는 다수가 트럼프와 함께하고 있다’는 팻말이 붙어있다. 취재 현장에서 경험했던 ‘다수의 침묵’ 역시 ‘트럼프 열기’의 한 단면으로 해석하는 듯했다.

하지만 침묵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말하지 않는 건 자존심 때문이지만 말하지 못하는 건 부끄러움 때문이다. 미국이 위대하지 않게 된 이유로 피부색이 다른 내 이웃을 지목하는 것 자체가 통합을 추구해 온 미국인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트럼프의 네바다 돌풍’도 해석이 가능하다. 트럼프의 무덤이 될 거라는 네바다에서 그는 히스패닉 표를 44%나 쓸어 담았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사람을 중남미 이민자들이 선택한 이유는 뭘까. ‘몰려오는 동포들에게 내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바로 히스패닉의 표심이었다. 결국 트럼프는 몸엔 해롭지만 갈증 해소엔 그만인 탄산음료 같은 존재인 셈이다.

선거에서는 숨어있던 이기심이 발현된다. 트럼프의 인기는 2016년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추한 욕망’의 총체적 발현이다. 그 욕망이 ‘변화를 갈망하는 시대정신’으로 둔갑해 미국을 분열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남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이 쥐꼬리만큼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다”거나 “삼성이 미국 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간다”는 그의 말 때문만은 아니다. 트럼프의 광기에 표적이 되면 한미동맹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대통령이 되면 달라지겠지’ 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트럼프 인기의 본질을 직시해야 해법이 보인다. 이제라도 트럼프를 분석하고, 주변에 줄을 대야 한다. 한심한 공약이라도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그게 두려운 ‘트럼프 시대’에 대비하는 길이다.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sunshade@donga.com
#트럼프#대선#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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