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색안경 끼고 상대 봐선 안돼”… 첫날부터 돌직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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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교황 미국 동시방문]
취임 이후 첫 국빈 訪美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워낙 유명해 중국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하다.”

22일 오후 워싱턴 주 시애틀의 웨스틴 호텔 연회장. 취임 후 역사적인 첫 미국 국빈방문 첫날 미중상공회의소 주최 만찬장 연단에 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여유 가득한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과 박수를 유도했다.

시 주석은 또 “현재 중국 공산당이 단합해 부정부패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서 “하지만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 나오는 것과 같은 권력 다툼은 없다”고 말해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시 주석 스스로 ‘광팬’이라고 밝힌 바 있는 미국의 유명 정치 드라마다.

시 주석은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오전 도착 때 맸던 푸른색 넥타이를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연상케 하는 붉은색 넥타이로 바꿔 맨 그는 만찬 내내 미국을 향해 할 말은 하면서도 이해와 협력은 강화하자는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했다.

중요한 대목에서 중국의 고전 명구를 대거 인용하며 화려한 언변을 구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미중 간에 상대방의 전략적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때는 한비자에 나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거짓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와 남이 도끼를 훔쳐간 것으로 공연히 의심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중국의 고사성어를 소개했다.

이어 “색안경을 끼고 상대방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며 “‘투키디데스 함정’은 세상에 없는 것이지만 대국 간에 전략적으로 오판할 경우 자신을 스스로 여기에 빠뜨릴 수 있다”고도 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 전쟁을 두고 ‘패권국과 신흥 강국이 싸우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한 내용으로 최근의 미중관계를 이야기할 때 종종 거론된다.

이날 연설의 초점은 예상대로 ‘국제질서 재편’과 ‘미중 신형 대국관계’ 구축에 집중됐다.

시 주석은 “중국인은 2000년 전 이미 ‘나라가 강해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한다(國雖大 好戰必亡)’는 진리를 알았다”며 “중국은 역대로 적극적인 방어군사 전략을 신봉해왔다.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중 신형 대국관계 구축과 관련해서는 ‘흔들림 없는 협력공영 추진’ ‘효과적인 갈등 해소’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우리는 이웃이 내 도끼를 훔쳐갔다고 의심해서는 안 되고, 색안경을 끼고 상대를 관찰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이 중국의 인권 문제, 언론의 자유 등을 공격하는 상황을 직접 겨냥했다.

중국의 안정된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할 때는 ‘봉황열반 욕화중생’(鳳凰涅槃, 浴火重生·봉황이 죽었다가 부활하고, 불 속에 뛰어들어 새 삶을 얻다)이란 표현도 썼다.

이어 ‘해와 달은 빛이 다르며 밤과 낮은 각자 의미가 있다’는 중국 속담을 거론하면서 ‘취동화이’(聚同化異·공통점은 취하고 차이점은 바꾼다)와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함)를 추구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와 함께 미국 작가들을 대거 인용하며 문학적 소양도 과시했다. 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팬이며 헤밍웨이처럼 쿠바 아바나의 술집을 찾아가 모히토 칵테일(럼에 레몬이나 라임 주스를 첨가한 술)을 마신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인용할 때에는 ‘옳은 일을 하는 데에는 시기에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시 주석은 자신의 중국산 스마트폰을 슬쩍 내비치며 중국의 기술력도 과시했다.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의 팬클럽이 운영하는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 계정에는 이날 만찬장 테이블에 놓인 시 주석의 이름표 옆에 중국 통신회사 ZTE가 최근 발매한 액슨 스마트폰이 있는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왔다.

이날 만찬에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 등 미국 측 정·관·재계 인사만 600여 명이 참석해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중국 최대 여객기 임대회사인 공상은행이 100% 출자한 공은조임(工銀租賃)은 이날 30대의 보잉 737-800기 구매 합의서에 서명했다. ‘시 주석이 미국에 안긴 첫 선물’이라는 평을 들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시진핑#색안경#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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