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4000명 구한 ‘중국판 쉰들러’ 있었다

  • 동아일보

나치치하 오스트리아 中총영사
징계 무릅쓰고 상하이행 비자 발급… CNN “죽을때까지 선행 감춘 영웅”

1930년대 말 나치의 집단 학살 공포에서 수천 명의 유대인의 목숨을 구한 중국 외교관이 ‘중국판 쉰들러’로 외국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허펑산(何鳳山·사진) 당시 빈 주재 중화민국 총영사. CNN방송은 20일 나치가 점령한 오스트리아에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구한 허펑산의 삶을 집중 조명하고 그가 ‘중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이유를 소개했다.

외교관으로 일하기 전 독일에서 유학한 허펑산은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이후 오스트리아 총영사로 부임한 그는 나치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상하이행 비자를 유대인들에게 거의 무제한으로 발급해 줬다. 그가 발급한 비자는 40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서방 국가들은 독일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비자는 물론 유대인 어린이들의 입양도 꺼리던 시절이었다.

허펑산도 상부로부터 ‘유대인들에게 더이상 비자를 내주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내부 징계까지 감내하며 유대인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계속했다. 그는 1938년 공포에 몸을 떨던 17세 유대인 청년 에리크 골드스파우브 씨도 오스트리아에서 구했다.

올해 94세가 된 골드스파우브 씨는 “우리 가족이 49개국 대사관들로부터 비자 신청을 거절당한 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빈 주재 중국 총영사관이었는데, 환한 미소로 ‘상하이 비자를 줄 테니 여권을 가져오라’고 했던 총영사관님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허펑산는 1997년 95세를 일기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대인 구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CNN는 이에 대해 “허펑산이 영웅으로 불리는 또 다른 이유”라고 전했다. 허펑산의 과거 행적은 그의 사후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모두 밝혀졌다. 올 4월 그를 기념하는 명패도 중화민국 빈 대사관 옛터에 걸렸다.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유대인#쉰들러#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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