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1부/미래형 직업을 찾아서]<6>재활용 선진국 독일의 도시광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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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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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철 모아 태산’… 급성장 도시광산 “고졸~박사 다 오세요”

독일 도르트문트의 도시광산 업체인 인터세로 공장에서 재활용 작업을 거친 철스크랩 뭉치가 나오고 있다. 철스크랩은 제강, 주조작업 등을 거쳐 철강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도르트문트=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독일 도르트문트의 도시광산 업체인 인터세로 공장에서 재활용 작업을 거친 철스크랩 뭉치가 나오고 있다. 철스크랩은 제강, 주조작업 등을 거쳐 철강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도르트문트=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길게 보고 재활용기업을 선택했어요. 계속 커가는 산업이고 미래가 있는 직업이니까요. 시끄럽고 먼지 날리는 공장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도 맞고요.”

독일 재활용업체 ‘인터세로’의 도르트문트 공장에서 만난 파비안 그리메르트 씨(23)는 입사 2년차 직원이다. 이곳은 원자재인 폐전자제품과 산업폐기물을 녹여, 그 안에 든 철과 비철금속을 뽑아내 스크랩 형태로 만드는 도시광산(urban mining) 공장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근의 한 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한 그리메르트 씨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그 대신 2010년 가을 직업학교에서 3년짜리 교육과정(아우스빌둥·Ausbildung)을 밟기 시작했다. 일주일 중 이틀은 직업학교에서 재활용 분야의 교육을 받고 사흘은 인터세로에서 실습생 겸 직원으로 일한다. 아직은 월 755유로(약 113만 원)만 받지만 1년 후 과정을 마치고 정규직원으로 입사하면 월 2100유로(약 312만 원)로 임금이 뛴다.

○ 급성장하는 첨단산업 도시광산


유럽 최대 공업지역인 독일 루르 지방의 중심도시 도르트문트. 1960년대만 해도 대규모 석탄광산이 있어 한국인 광원이 많이 파견됐던 이 지역은 2000년대 들어 도시광산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석탄 자원은 고갈됐지만 고철과 폐전자제품, 산업폐기물을 새로운 자원으로 삼아 도시광산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이다.

독일에서 재활용산업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다. 2010년 약 850억 유로(약 128조 원) 규모인 독일의 재활용산업이 2020년에는 자동차산업 규모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재활용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만 32만 명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도시광산은 급성장하는 첨단산업이다.

독일 재활용업체 중 매출 2위인 인터세로는 1991년 35명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1800명으로 임직원이 늘었다. 도시광산 분야에서 전체 독일시장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광산을 포함한 재활용산업이 너무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인력 공급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다. 구인난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세로는 소수의 석·박사급 인력을 제외하고는 직접 인재를 키우는 전략을 선택했다.

인터세로는 직업고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아우스빌둥’ 실습생을 매년 100명 이상 선발한다. 이들은 앞서 소개한 그리메르트 씨처럼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전문성을 키운다. 나이가 어린 점을 감안해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역문화센터, 교회, 정당 등과 연계한 인성교육까지 한다. 3년 과정을 마친 실습생 중 70% 이상이 정식직원으로 채용된다. 대학생 인턴십 과정 등을 통해서도 인재를 충원하고 있다.

○ ‘고졸부터 박사까지’ 일자리 창출


도시광산업은 육체노동자부터 고학력 근로자까지 다양한 인력을 필요로 한다. 인터세로 공장에서 만난 그리메르트 씨는 재활용에 필요한 원자재인 산업폐기물을 주변 국가에서 수입하는 무역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재활용 강국인 독일은 국내에서 나오는 4100만 t의 폐기물로는 부족해 매년 이웃 나라에서 500만 t 이상의 폐기물을 수입해 처리하고 여기서 나온 금속을 다시 해외로 수출한다.

같은 공장에서 만난 안드레아스 킬라젠스키 씨는 16년째 중장비 운전을 맡고 있다. 폴란드 출신인 그는 고교 졸업 후 중장비 기술을 배워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킬라젠스키 씨는 “산업폐기물을 새로운 자원으로 바꾸는 일에 종사하는 게 대단히 만족스럽다. 회사가 나날이 성장하고 있어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인터세로의 클라우디아 마르 채용담당 부장(33·여)은 “학력 조건이 필요 없는 폐기물 수거원부터 중장비 기사, 무역담당자, 재활용 신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박사급 인력까지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업 초창기였던 1990년대만 해도 공장에서 일할 직원이 주로 필요했지만, 지금은 해외무역 업무가 중요해져 무역 관련 사무직원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인터세로는 폐기물을 수입하고, 생산된 철과 비철금속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유럽 14개국과 미국, 중국, 홍콩에 지사를 두고 있다. 마르 부장은 “지난해 매출 27억 유로(약 4조500억 원)의 대기업이 된 만큼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며 “향후 10년간 도시광산을 포함한 재활용산업은 독일 내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獨-日-美, 도시광산서 산업 금속원료 40% 이상 확보 ▼


독일이 도시 광산업 등 재활용산업의 선진국이 된 데에는 엄격한 환경규제의 영향이 컸다. 독일은 통일 직후인 1990년에 ‘환경헌법’으로 불리는 환경책임법을 만들었고, 1994년엔 자원재활용산업 및 폐기물 관리법을 제정했다. 산업폐기물에 대한 관리가 엄격해지자 인터세로, 레몬디스 등 산업폐기물 등을 재활용하는 전문기업들이 생겨났다.

폐전자제품에서 값비싼 금속을 분리, 가공하는 도시 광산업은 2002년 유럽연합(EU)이 폐전자제품 처리지침을 만든 뒤 본격화됐다. 사용 후 버려지는 전자, 전기제품의 수거와 처리를 생산자가 책임지도록 강제하는 이 지침 때문에 가전업체의 부담은 가중됐지만 재활용 업체들에는 새로운 기회가 된 것이다.

독일 일본 미국은 이미 산업원료로 쓰이는 금속자원의 40% 이상을 도시 광산을 통해 확보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구리의 재활용률은 54%, 납 재활용률은 59%나 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재활용률은 구리 12%, 납 20%에 그치고 있다.

독일은 앞선 재활용 기술을 무기로 해외 진출도 꾀하고 있다. 인터세로는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재생자원개발유한공사가 쓰촨(四川) 성 네이장(內江) 시에 세우고 있는 재생자원기지에 재활용 설비를 설치하는 등 중국 내 사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도르트문트=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 “46조원 가치 재활용 금속 잡아라”… 한국 대기업들도 잇따라 사업 참여 ▼


21일 충북 단양군에 위치한 LS니꼬동제련의 자회사 ‘지알엠’에서 한 직원이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제작하면서 나온 산업폐기물을 녹여 구리를 추출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LS니꼬동제련 제공
21일 충북 단양군에 위치한 LS니꼬동제련의 자회사 ‘지알엠’에서 한 직원이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제작하면서 나온 산업폐기물을 녹여 구리를 추출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LS니꼬동제련 제공
한국의 도시광산 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최근 대기업들이 잇따라 진출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도시광산 산업에 진출한 대표적인 대기업은 LS니꼬동제련 고려아연 포스코 등. LS니꼬동제련은 2008년 토리컴을 시작으로 2009년 리싸이텍코리아, 2010년 화창 등 도시광산 관련 기업을 인수했다. 토리컴은 폐(廢)자원에서 금 은 백금 등을 추출하고 있으며 화창은 폐배터리에서 순연, 경연을 뽑아낸다. 포스코의 비철금속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포스코엠텍 역시 지난해 4월 도시광산업체인 리코금속을 인수해 도시광산 분야에 진출했다.

삼성물산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한화S&C도 주력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자재나 부산물에서 자원을 추출하기 위해 도시광산 분야에 진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정부도 도시광산 사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2009년 지식경제부를 주축으로 6개 부처 합동으로 수립한 ‘숨은 금속자원 찾기 프로젝트’를 통해 2014년까지 800억 원의 연구개발(R&D)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경부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폐전기·전자제품과 폐기된 자동차, 산업폐기물 등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금속의 가치는 46조4000억 원(누적 기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도시광산과 관련된 일자리도 2020년까지 2만∼3만 개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광산의 공정은 폐자원을 수집한 뒤 쓸 만한 자원을 선별해 잘게 부수고, 가치가 있는 자원을 추출하는 정련 과정 등으로 이뤄진다. 폐자원을 수집 및 선별하는 과정은 고물상 등 외주에 의존하지만 자원을 추출해 정련하는 생산직은 고등학교나 전문대에서 화학 전기 기계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을 주로 채용한다.

자원 추출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직에도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다. 주로 전문대나 대학에서 화학 및 기계를 전공하고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 아직까지 한국의 기술수준은 폐휴대전화 등 전자제품에서 금 은 등 귀금속을 채취하는 수준이지만 산업자재에서 리튬 코발트 등 희귀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종수 포스코엠텍 상무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도시광산 산업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특히 도시광산 관련 기술력이 선진국에 뒤진 만큼 연구인력의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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