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고릴라 몰아내자”… 슬로바키아 총선, 야당 압승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3일 03시 00분


“슬로바키아에서 고릴라와 말미잘을 몰아내자.”

10일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야당인 ‘스메르 사회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스메르당이 지지율 44.4%를 얻어 전체 의석 150석 가운데 83석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연방에서 독립한 슬로바키아에서 단일 야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해 정권 교체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다.

우파연정이 이끌던 집권세력의 성적은 참혹했다. 2010년 총선 당시 합계 79석을 얻었던 연정은 핵심세력인 ‘슬로바키아민주기독연맹(SDKU)’이 득표율 6.1%로 원내 진입 기준인 5%를 겨우 넘겼을 정도. SDKU 총재인 이베타 라디초바 현 총리는 11일 “모든 책임을 지고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권의 몰락은 지난해 터진 ‘고릴라 스캔들’의 영향이 크다. ‘고릴라’는 슬로바키아 저널리스트 톰 니콜슨이 10여 년 전 쓴 책의 제목으로 소수 정치엘리트 집단을 빗댄 말이다. 오랜 세월 부정부패 의혹은 컸지만 증거가 없어 고릴라는 ‘어둠 속 성역’처럼 여겨졌다. 말미잘은 뇌물을 받은 고릴라가 특정기업에 여러 분야의 정부사업을 맡기는 비리 행태를 풍자한 은어다. 무성하게 나돌던 고릴라와 말미잘 소문은 지난해 말 이 커넥션의 구체적 정황이 담긴 정부 문서가 유출되며 실체를 드러냈다. 특히 현 정권의 상당수 인사가 연루돼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번 선거 역시 수도 브라티슬라바 등에서 갈수록 시위가 거세지자 여권이 조기총선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뉴욕타임스는 “고릴라는 과거 공산국가였던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비밀경찰세력이 모태”라며 “숨겨져 있던 역사의 매듭이 가닥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정권교체가 비리 척결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총선에서 승리한 스메르당도 고릴라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신임총리로 내정된 스메르당의 로베르트 피초 총재(사진)도 2006∼2010년 총리 재임 당시 고릴라와 연계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 스메르당 역시 이번 선거에서 말미잘로 지목된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정치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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