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구촌 새권력/러시아]“부패한 푸틴 사단, 공공의 적” 중산층 등돌려

  • 동아일보

내일 대선… 싸늘한 민심 르포

“푸틴 사단과의 ‘리치나야 스뱌지’(‘친분’을 뜻하는 러시아어)가 없으면 어떤 일도 계속하기 힘들어요.”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에서 자본금 30만 루블(약 1100만 원) 규모의 작은 통신장비 회사를 운영하는 드미트리 소콜로프 씨(42)는 반푸틴 시위에 참가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모스크바에서 자란 그는 지난해 기지국 운용 장비 입찰에 참가했으나 탈락했다. 러시아 3대 이동통신사인 메가폰이 실시하는 공개 입찰이었는데 탈락 후 “너는 피테르(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별칭)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메가폰의 주요 주주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사진)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인 페테르부르크 출신들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 출신 기업인이 아무리 성능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장비를 납품해도 ‘페테르부르크 문지기들’에게 가로막힌다고 소콜로프 씨는 분개했다.

소콜로프 씨는 “푸틴이 대선에 당선되면 6년 임기를 두 번이나 할 수도 있는데 푸틴과 어떤 인연도 없는 절대 다수의 중산층은 푸틴 사단의 부패와 장기집권 앞에서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4일 실시되는 대선에서 푸틴이 블루칼라 노동자와 농촌 유권자 등의 두터운 지지로 당선이 유력하지만 ‘깨어있는 지식인과 중산층이 밀집한 모스크바’에서는 이처럼 ‘푸틴 시대의 정경유착과 부패’가 지속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탈리야 티모노바 러시아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산층이 인구의 30%(약 3600만 명)를 훌쩍 넘었는데 푸틴 사단의 인맥에 기회가 막히면 부패문제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푸틴 사단의 부패로 인력채용에서 경쟁이 배제돼 자원배분에서 비효율성을 낳고 있다는 것이 반부틴 세력의 시각이다. 2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만난 안나 마테고랴 씨(27·여)는 “푸틴 사단의 부패는 러시아 발전을 가로막는 공공의 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러시아 중부 노보시비르스크대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리나 오를료바 씨(23·여)는 올해 러시아 최대 국영기업인 가즈프롬 신입사원 채용에 3번 응시해 고배를 마셨다. 그는 “가즈프롬은 푸틴 사단의 직계 가족이거나 이들과 관계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이고리 이바노프 씨(45)는 “푸틴이 2004년부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연결하는 2차로를 넓히겠다고 공언해 왔는데 아직도 손도 못 대고 있다”며 “모든 게 다 공사대금을 가로 챈 푸틴 사단의 부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력 대신 ‘푸틴 친분’을 중시하는 풍토는 검찰 경찰 연방보안국(KGB의 후신) 등 공안기관 직원 채용에서 더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푸틴과의 연줄이 ‘미다스의 손’이라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전직 유도 코치였던 아르카디 로텐베르크 씨는 유도를 통해 푸틴과 관계를 맺은 뒤 가즈프롬에 석유관을 공급하는 사업으로 수십억 달러의 거부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푸틴은 2000년 처음 집권하면서 옛 소련 시대의 정경유착으로 부를 축적한 ‘올리가르키’에 대해 대대적인 숙정작업을 벌였지만 푸틴 집권 후에도 많은 사람이 연줄을 타고 졸부 신화를 만들어냈다.

모스크바=정위용 기자
모스크바=정위용 기자
한편 러시아 대선 후보들은 2일까지 선거 운동을 마무리했으며 선거 하루 전인 3일엔 ‘정적의 날’을 준수한다. 일체의 선거 운동이 금지되는 것이다.

앞서 푸틴 총리는 1일 모스크바 교외 관저에서 서방 언론 편집인들과 면담을 갖고 이번에 당선되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총리에 임명할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그는 또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결정을 메드베데프 대통령와 함께 지난해 말에 내렸다고 공개했다.

모스크바=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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