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대본’처럼 날아온 원고… 잡스의 傳記도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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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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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전세계 동시출간 앞두고 ‘아날로그식 보안’ 화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정보기술(IT)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전기(傳記) 원고가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제게 배달됐습니다. 한국의 드라마 작가들도 애용하는 ‘쪽대본’ 형식이었죠.”

번역가인 안진환 씨는 7월 말 미국의 사이먼 앤드 슈스터 출판사로부터 국제우편물을 받았다. 전기작가 월터 아이잭슨이 쓴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제목 ‘스티브 잡스’) 원고였다. 요즘 번역 원고는 e메일로 주고받는 게 추세인데, 출판사 측은 책을 장(章)별로 A4 용지에 복사해 여러 차례에 걸쳐 국제우편물로 보냈다. 원고 전체가 한꺼번에 유출될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다.

23일 오후 6시(미국 동부시간 기준) ‘스티브 잡스’의 전 세계 동시 출간을 앞두고 각국 번역본 출판사에 사전 유출을 막기 위한 보안 비상이 걸렸다.

미국 출판사 측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어 번역본 출판을 맡은 민음사에도 번역자, 편집자, 북디자이너, 저작권 담당자 등 4명의 ‘서약서’를 요구했다. “사전에 유출될 경우 번역 출판계약이 파기됨은 물론이고 어떠한 손해배상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민음사 측은 국내에서 인쇄 작업 도중 원고가 유출될 상황을 우려해 인쇄소 측에도 별도의 비밀유지 서약서를 요구했다.

안 씨는 “20년 넘게 번역작업을 해왔지만 서약서를 쓰고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달 만에 940쪽에 이르는 방대한 원고를 번역하느라 밤샘 작업을 해야 했다.

당초엔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려 11월 중순 출간할 예정이었지만 잡스의 사망으로 발매일이 앞당겨졌다. 소니픽처스가 영화 판권을 구입해 영화로도 제작할 예정이다. 이 책은 현재 예약주문만으로도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민음사는 국내에서도 초판 인쇄 10만 권이 출간 직후 바로 소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어판은 번역과 디자인 작업 등을 모두 마치고 현재 밤샘 인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책은 저자 아이잭슨이 2년간 40여 차례에 걸쳐 잡스를 인터뷰하고 썼다. 안 씨는 “그동안 잡스 관련 책은 작가의 해석만 있었지 잡스에게 물어보고 쓴 책은 없었다. 이 전기는 잡스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는 유일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또 안 씨는 “사람들은 잡스에 대해 늘 독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지나치게 집착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표면적인 행태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 잡스 자신의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잡스는 생전에 출판사 측과 “집필 과정에 절대 관여하지 않으며, 사전에 원고를 보지 않겠다”는 원칙에 동의했다고 한다. 장은수 민음사 편집인은 “잡스는 긍정적,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객관적, 종합적으로 쓰길 원했다”며 “그는 출간된 전기를 보기 원했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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