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퇴진한다면 누가 리비아 이끄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0일 2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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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릴 위원장 등 새 인물 점차 부상
장기독재로 권력공백.분열 우려도

미국, 영국, 프랑스 주도의 서방 연합군이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본격화하면서 '포스트 카다피' 시대를 누가 이끌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사실 미국 등 서방의 관심은 독재타도와 민주정부 수립, 민간인 학살 방지라는 명분과 석유 이권 확보 이외에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타도와 친 서방 대체정권의 등장이 핵심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방 다국적군의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공습 만으론 반군에 비해 막강한 카다피 측 군사력을 패퇴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카다피 이후 리바아의 체제와 지도부를 예상하는 일은 다소 성급한 일이자 전망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독재체제가 무려 42년간 지속하면서 리비아에는 카다피 이후를 준비해온 야당이나 시민. 사회. 노동. 종교단체 등 대체 세력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상당기간 권력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140여 개 부족 간의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증폭될 경우 혼란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분열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더블린에 있는 망명 '무슬림 형제단'의 아뎀 아르퀵은 최근 뉴욕 타임스에 "야권 세력 간에 아무런 소통도 없고, 지도부도 없다"면서 "통합 노력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리비아 사태가 한 달여 동안 지속하면서 카다피 이후 시대를 주도할 만한 인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이들의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무스타파 모하메드 압델 잘릴=반군 측 임시정부에 해당하는 국가위원회의 위원장. 2007년부터 법무장관을 지냈으나 지난달 21일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실탄 사격에 항의해 정부 각료로는 처음 사임했다. 사임 직후 동부의 반군들이 그를 국가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온건하고 독실한 이슬람 신자로 알려져 있다. 카다피 정부는 지난 9일 잘릴 전 장관에 50만 디나르(약 4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압둘 파타 유니스 알-오바이디=1969년 카다피 주도의 쿠데타에 가담한 '혁명공신'. 육군 소장으로 내무장관을 맡고 있던 지난달 자신의 부대에 벵가지 정부군 공격을 명령하면서 반군에 가담했다. 최대부족인 알-오바이디족 출신. 국가위원회는그가 믿을만한 군인으로 카다피 축출 후 선거가 실시되기 전까지 3개월간 국정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하고 있다.

▲오마르 알 하리리=역시 1969년 쿠데타에 참여한 장교 중 한 명으로 1975년 동료 장교들과 함께 카다피 정권 전복을 모의하다 발각돼 사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반정부 시위대에서 영웅으로 불리는 그는 이후 독방 등에서 15년간 옥살이하다 1990년 감형돼 이번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기 전까지 토브루크의 한 가옥에서 연금생활을 했다. 현재 반군의 국가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아부 바크르 유니스 자베르='혁명위원회' 초대 멤버로 오랫동안 카다피의 이너 서클로 있었으나 오랜 군 경험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킬 잠재력이 있는 인물'로 지목돼 현재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

▲압둘 살람 잘루드=1969년 쿠데타에 가담한 '혁명 공신'으로 학창시절부터 카다피의 친구였다. 2인자로 군림하기도 했으나 1993년 계급이 강등되고 2년 후 권력에서 축출됐다. 지금은 카다피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셰이크 아크람 엘-와르펠리=대부족인 와르펠라족의 원로로 한때 카다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1993년 카다피 축출을 위한 쿠데타를 시도했다. 지난달"카다피는 이제 우리의 형제가 아니다"면서 "나라를 떠나라"로 촉구했다.

▲모하메드 알-세누시 왕자=카다피가 축출된 후 혼란이 커질 경우 국가통합을위해 입헌군주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입헌군주제 성립 시 가장 강력한 국왕 후보. 1969년 큰할아버지 이드리스 국왕이 카다피에의해 축출될 당시 7세였다. 이후 1988년까지 영국에서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아랍 언론에 나와 카다피에 학살 중단과 출국을 촉구했다.

▲자말 알-하지= 인권운동가이자 작가, 변호사로 '2월17일 운동'을 주도했다. 카다피 정권은 2006년 2월 17일 벵가지에서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했었다. 리비아와 덴마크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여러 차례 투옥됐으며, 지금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복역 중이다.

▲술레이만 압둘 카데르=망명 '리비아 무슬림 형제단'의 위원장. 1998년 반정부 세력에 대한 강경 탄압 후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인권을 존중하는 법률의 바탕 위에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마흐무드 지브릴=국가위원회 비상위원장.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대학에서 전략 계획과 의사결정 박사학위를 딴 뒤 수년간 이 대학에서 강의하고 여러 아랍 국가에서 리더십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리비아 국가계획위원회 대표와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에선 "개혁적 마인드의 소유자" 또는 "미국적 시각을 가진 진지한 협상 상대"라고 평가하고 있다.

▲압델 하페즈 고카=국가위원회 부위원장 겸 대변인. 벵가지의 인권 변호사이자 자치조직 운동가로 활동했다. 리비아 변호사협회 회장이었던 그는 반정부 시위가시작된 직후인 지난달 19일 체포됐으나 며칠 후 석방됐다. 이후 그는 잘릴 전 장관이 만든 과도정부 기구와 필적하는 또다른 반정부 기구의 대변인을 자처하면서 유명해졌으며 이달 초 `국가위원회'의 부위원장이자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알리 에사위=전 인도대사로 지난달 21일 정부군의 무력사용과 용병 고용에 항의해 사임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립대 경제학부에서 민영화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5년 민영화를 독려하는 리비아 정부 기금인 '소유권 확장 프로그램'을 맡았다. 2007년에는 최연소 경제부 장관에 임명됐으나 2009년 개각 때는 아무런 직도 맡지 않았다.

▲타렉 사드 후세인=벵가지에서 반군을 이끄는 '7인의 대령' 중 한 명. 지난달 반군에 가담한 그는 자신이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민중 봉기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국가가 아니라 민주국가를 희망한다. 군사정권에 신물이 났다. 군은 통치가 아니라 국방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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