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위현장 ‘女風당당’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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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취업 차별받던 여성들, 의료-음식봉사 등 적극 참여

의학도인 이집트 여대생 헨드 아흐메드 씨는 요즘 대학 대신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으로 출퇴근한다. 광장에 설치된 임시 진료소에서 부상당한 시위대들을 돌보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문다. 그는 이집트의 보통 여대생들처럼 원래 정치에는 무관심했으나 시위 소식을 접한 뒤 이곳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여성 영양사인 셰리파 아불포투 씨도 타흐리르 광장에서 음식과 음료수 등을 나눠주며 반정부 시위를 돕고 있다. 아불포투 씨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국민이 원하는 정치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반정부 시위의 메카 타흐리르 광장에 가면 요즘 어디를 둘러봐도 여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 여성들은 이슬람 전통 의상인 히잡이나 부르카를 뒤집어 써야 하고 교육과 취업 등에서도 각종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정치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들의 정치 참여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하지만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이집트 여성들이 변화하고 있다.

AFP통신은 히잡 등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뿐 아니라 최신 유행의 옷을 갖춰 입은 여성들이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광장으로 몰려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dpa통신은 시위 과정에서 숨진 순교자 포스터가 광장에 걸려 있는데 이 중에는 미소 짓는 젊은 여성 살리 자흐란 씨의 사진도 있다고 전했다. 자흐란 씨는 지난주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가 충돌했을 때 입은 뇌 손상으로 결국 숨졌다.

오전에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오후에 시위대에 합류하는 ‘아줌마’도 적지 않다. 대학원생인 마르와 이브라힘 씨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똑같이 시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집트의 현직 여성언론인 모나 엘타하위 씨는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과의 인터뷰에서 “이집트는 1920년대부터 여성운동이 시작됐을 정도로 여성운동의 역사가 깊지만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하에서는 여성 시위대원을 발견하면 경찰들이 몸을 더듬는 등 성희롱을 하며 탄압해 여성의 참여가 억눌려왔다”며 “이번에 많은 여성이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고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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