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BI, 러 정보요원 10명 체포

  • Array
  • 입력 2010년 6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숨막힌 10년 추격전’ 첩보영화 방불
전화-e메일 도청, 몰카 등 스파이 활동 끈질긴 추적

‘암호화된 무선메시지, 땅에 묻힌 돈, 가짜신분증, 호텔 객실의 몰래카메라….’

미국 법무부가 28일(현지 시간) 러시아 정보요원 10명을 붙잡아 간첩활동 혐의로 기소한 내용을 보면 냉전시대의 첩보 영화를 연상케 한다.

미 연방수사국(FBI) 방첩부는 러시아의 대외첩보부(SVR) 소속 비밀요원들이 미국과 캐나다인 신분으로 몰래 위장해 오랫동안 스파이활동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포착하고 수년 동안 추적한 끝에 러시아 정보요원 10명을 미국에서 불법적으로 정보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에게 공작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정보요원 한 명은 아직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러시아 대외첩보부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정보당국으로 과거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後身)이다. 체포된 10명은 외국 정부를 위한 첩보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뉴욕 남부연방지법에 이날 기소됐다.

FBI 요원들이 러시아 간첩혐의자들을 감시한 정황을 보면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주 찾는 레스토랑이나 호텔 객실에는 몰래카메라를 달았다. e메일을 몰래 열어보고 전화도청을 한 것은 물론이다.

FBI가 이들의 간첩활동을 파악한 때는 2000년. 간첩혐의자들은 1990년 초반이나 중반부터 신분을 위장해 미국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유엔주재 러시아대표부 직원 등 미국에 있는 러시아 관리들로부터 자주 돈 가방을 전달받았고 한 혐의자는 남미의 한 나라에서 온 러시아 관리로부터 돈을 받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또 공원 벤치에서 현금이 든 쇼핑백을 건네받기도 했다. 2006년 6월엔 간첩혐의자 2명이 뉴욕에서 다른 스파이가 2년 전 땅속에 묻어놨던 돈다발 봉지를 파내기도 했다.

스파이들은 러시아 대외첩보부 본부인 ‘모스크바 센터’와 교신하기 위해 다양한 첨단수법과 장비를 활용했다. 무선 전보와 폐지된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특정 주파수에서만 암호를 받을 수 있는 무선장치나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파일에 또 다른 비밀스러운 내용을 숨겨놓는 기법도 동원됐다.

스파이들은 또 휴대용컴퓨터에 개인무선망을 설치한 뒤 커피숍이나 달리는 차량 안에서 러시아 관리들과 정보를 주고받았다. 이들이 이용한 은행의 대여금고에서는 2005년 사망한 캐나다 남자의 신분증도 발견됐다. ‘모스크바 센터’가 보낸 지령에선 “너의 주 임무는 미국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과 관계를 모색하고 정보보고서를 모스크바 센터로 보내는 것”이라고 돼 있다. 스파이들은 포섭한 미 권력층 내부 정보원을 ‘농부’ ‘고양이’ ‘앵무새’와 같은 암호로 불렀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