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법영웅, 사법심판대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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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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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내전중 학살 수사는 직권남용” 고발
희생자 유가족들 “사법정의의 실종” 강력 반발

사법영웅인가 아니면 공명주의자인가. 스페인 내전(1936∼39년) 당시 학살과 고문 등 반인도적 범죄 수사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스페인의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54)가 7일 직권남용 혐의로 대법원의 치안판사에 의해 기소됐다. 이에 앞서 그는 스페인 내전 기간에 발생한 범죄에 사면을 내렸던 1977년의 국가포고령을 무시하고 민간인 집단 실종사건 재조사를 명령해 재판권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공무원조합 등 3개 보수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기소된 가르손 판사는 곧 직무가 정지되며 재판은 6월 시작될 예정이다. 가르손 판사가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유죄가 확정되면 10∼20년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게 돼 그의 법관 경력은 사실상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가르손 판사가 기소된 데 대해 스페인 내전 희생자 유가족들은 “사법정의가 실종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르손 판사는 1990년대 반인도적 범죄 처벌에는 공소시효나 국경도 제한이 없다는 신념을 갖고 프란시스코 프랑코 집권 아래 벌어졌던 집단 학살사건을 재조사해 왔다. 좌파와 국제 인권단체에서는 그를 영웅시했지만 보수파들은 그가 우파에 원한을 갖고 유명해지기 위해 국가의 사면법까지 무시하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해 왔다.

가르손 판사의 판결은 스페인 내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1998년 영국에 머무르던 칠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기소했다. 2003년에는 9·11테러의 주범으로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기소했다. 또 관타나모 수용소 고문 행위와 관련해 알베르토 곤살레스 전 법무장관 등 미국 전직 관리 6명을 기소하기도 했다. 이는 스페인의 현행법이 고문이나 전쟁범죄 등 국제법 위반 행위에 한해 외국에서 발생한 사건도 기소할 수 있다는 이른바 ‘보편적 관할권’을 인정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일련의 사건에 기소나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그는 유명해졌지만 동시에 명성을 좋아하는 공명주의자라는 비난도 함께 받았다. 가르손 판사는 이에 대해 “나의 조사는 합법적이었다”고 반박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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