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코펜하겐] 李대통령 기후회의 연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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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y Mover” 녹색성장 한국이 주도 “Me First” 선진-개도국 중재 자임
“에너지 집약구조인 한국, 어렵지만 CO2 자발적 감축”
감축행동 등록부 설치 제안
덴마크 초안에도 포함돼

‘얼리 무버(Early Mover·일찍 움직이는 사람).’

이명박 대통령은 17일 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열리는 덴마크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아우르는 ‘중간자’ 혹은 ‘가교’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 이면에는 녹색성장을 지향하는 세계적인 추세에서 한국이 앞서간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영어로 한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의 선제적 조치를 설명하며 국제사회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이 두 배로 증가할 정도로 에너지 집약형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최고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하지만 한국은 수십 차례의 힘든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이 어려운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국론을 모았고 얼리 무버로서 이 목표를 향한 행동을 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이 비의무 감축 국가이지만 자발적으로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최고 수준의 국가 온실가스 중기감축목표를 제시한 것은 ‘나부터(Me First)’ 행동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선제적 조치에 따른 자신감과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양쪽 모두에 양보를 촉구하며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덴마크 정부가 마련한 초안에는 한국이 중재안으로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행동 등록부(NAMA Registry) 설치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총회에서 온실가스 감축 규모 등을 놓고 첨예하고 맞붙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서로 우리 정부 관계자들에게 중재를 요청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미국은 코펜하겐 현지에서 “중국 같은 큰 나라가 온실가스를 감축한다고 국제지원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냈고, 중국은 “우리가 언제 돈을 달라고 했느냐”고 반박하는 등 양국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는 지구의 온도가 (산업화시대 이전에 비해) 섭씨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한다는 데 이미 의견을 모았다”며 “세계가 우리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들에게 실망이 아니라 희망을 안겨줄 수 있도록 함께 행동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이 대통령이 기조연설에서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GGGI) 설립과 2012년 당사국총회 유치 의사를 공개 표명한 것도 기후변화 이슈를 선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우리 정부가 구상하는 녹색성장연구소는 궁극적으로 국제기구를 지향한다. 한국 정부를 중심으로 다른 국가 및 기후변화 관련 기관이 예산을 공동으로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국에 본부를 두되 2012년까지 선진국 및 개도국에 5개 안팎의 지부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있다. 이미 니컬러스 스턴 영국 정경대 교수, 토머스 헬러 미 스탠퍼드대 교수 등 기후변화 및 녹색성장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라고 한다.

김상협 대통령미래비전비서관은 “(연구소는) 선진국과 개도국을 아우르는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시각에서 국가별 상황에 적합한 녹색성장 방법론을 분석 제시함으로써 전 세계적 기후변화 문제 해결과 경제성장 달성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시아 지역 개도국에 녹색성장을 통한 경제성장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도 이 연구소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비서관은 “연구소 설립은 한국이 국제기구의 본부 소재지가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에 이어 2012년 제1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도 유치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유치 의사 표명에 이어 카타르도 유치 의사를 밝힌 상태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이 총회 유치 의사를 밝히자 올해 의장국인 덴마크와 주요 아시아 국가가 환영의 뜻을 전해 왔다”고 말했다. 유치국 선정 결과는 내년 멕시코 총회에서 확정된다.

코펜하겐=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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