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동맹 소중” “주민이 볼모냐” 갈라진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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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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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후텐마 비행장 이전 진통 기노완-나고市를 가다

일본 오키나와 현 남부 기노완 시에 위치한 후텐마 미군 비행장.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아 시민들이 소음과 위험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1996년 이 기지를 같은 현 나고 시로 이전하기로 합의했지만 정당 간 이견이 큰 데다 주민 의견도 찬반으로 양분돼 진척이 없는 상태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일본 오키나와 현 남부 기노완 시에 위치한 후텐마 미군 비행장.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아 시민들이 소음과 위험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1996년 이 기지를 같은 현 나고 시로 이전하기로 합의했지만 정당 간 이견이 큰 데다 주민 의견도 찬반으로 양분돼 진척이 없는 상태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일본 정국이 후텐마(普天間)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오키나와(沖繩) 현 남부 기노완(宜野灣) 시의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은 후텐마 미군 해병대 비행장. 미일 정부가 1996년 후텐마 기지를 같은 현 북부 나고(名護) 시의 헤노코(邊野古) 연안부에 있는 캠프 슈와브로 이전하기로 합의한 지 13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진척이 없다. 나고 시민들은 첨예한 찬반양론으로 분열됐다. 연립정부의 한 축인 사민당은 후텐마가 헤노코로 이전되면 연립을 깨겠다고 위협하고,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미일관계에 금이 갈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민주당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덫에 걸려 있다.
기노완·나고(오키나와)=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기노완 “기지 빨리 떠나라” 주택가 옆에서 수시 이착륙
“굉음-추락사고 지긋지긋” 지난달 2만여명 항의시위

○ “소음과 위험에 수십 년 시달려”


후텐마 비행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기노완 시 가카즈다카다이(嘉數高臺) 공원. 1945년 오키나와전쟁 최대 격전지인 이곳에 평화를 기념하며 세운 공원이다. 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후텐마 기지를 빨리 돌려 달라’는 간판이 정면에 보인다. 주택 밀집지역에 바짝 붙어있는 비행장에서 수시로 이착륙하는 대형 헬기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후텐마 기지는 시 면적(19.69km²)의 4분의 1에 가까운 4.8km².

“비행기 굉음에 귀를 막아야 할 때가 하루에 열 번도 넘어요. 기노완 시민이라면 누구나 후텐마 기지를 하루 빨리 내보내고 싶어 합니다. 이젠 지긋지긋해요.” 기지 주변에 사는 환경미화원 나카자토 신스케(仲里眞助·62) 씨는 3일 “후텐마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위험을 가슴에 안고 산다”며 기지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를 손에 꼽았다. 나카자토 씨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인근 비행장에서 헬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청소차 안에서 낮잠을 청하던 그의 동료는 얼른 창문을 올렸다. 공격 헬기와 대형 수송기의 이착륙이나 급선회로 5초 이상 지속되는 굉음은 하루 평균 50회를 넘는다.

후텐마 기지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오키나와국제대에는 2004년 8월 대형 수송헬기(CH53D)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다시 지은 대학 본관의 옥상에는 가로 19m, 세로 8m 크기로 ‘NO FLY ZONE(비행금지구역)’이라는 대형 경고문이 나붙었지만 아직도 헬기는 대학 상공을 날고 있다.

기노완 해변공원에서는 지난달 8일 2만여 명의 주민이 참가한 가운데 “후텐마 비행장은 오키나와를 떠나라”는 집회가 열릴 정도로 후텐마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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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다수는 “위험시설 싫다” 정치권, 결론 미룬 채 표류


○ “찬성” “반대”…둘로 갈라진 나고

기노완 시에서 북서쪽으로 60km 떨어진 나고 시는 현재 후텐마 기지가 이곳에 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격전 중이다. 내년 1월 24일 치러지는 나고 시장 선거에서도 기지 이전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거에는 기지 이전에 찬성하는 현직 시장과 반대파 단일후보가 맞붙는다. 찬성파는 주로 기지 이전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와 미일관계에 대한 책임론을 내세운다. 반대파는 기지가 옮겨오면 주변 지역이 위험해지고 환경이 파괴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겉으로는 조용한 소도시였지만 길거리는 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나 낙서로 어수선했다.

주민들도 둘로 갈라졌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찬성파는 돈 때문에 주민에게 위험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찬성하는 쪽에서는 “그 사람들은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며 경제적 효과를 내세운다.

6년째 캠프 슈와브 인근 해변에서 텐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아시토미 히로시(安次富浩·63) ‘기지반대협의회’ 대표는 “오키나와의 평화와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기지 이전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오키나와에 주일 미군 기지의 75%가 집중돼 있다”며 “이제까지 일본과 미국은 오키나와를 제물로 삼아 안보동맹을 유지해 왔다”고 강조했다.

텐트 농성장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이전)추진협의회’ 사무실이 있다. 미야기 야스히(宮城安秀·54) 대표는 “후텐마 기지가 이곳으로 오면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며 “오키나와에서도 사정이 가장 나쁜 북부지역의 경제와 고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바다 위에 기지를 짓는데 뭐가 그렇게 위험하단 말이냐”고 반문했다.

나고 주민들의 의견은 대체로 7 대 3 정도로 반대파가 우세하다는 게 현지 여론이다. 그러나 정원이 26명인 나고시의회는 이전 찬성 12명, 반대 14명으로 팽팽하게 갈려 있다. 최대 관심인 시장 선거는 기지 문제 외에도 여러 쟁점이 있어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상황이다.

기노완·나고(오키나와)=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내달 시장선거 앞둔 나고 ‘후텐마 비행장 수용여부’ 후끈

“年 100억엔 지원 포기할거냐”
이전 찬성 현직시장



시마부쿠로 요시카즈(島袋吉和·63·사진) 나고 시장은 2일 “후텐마 기지를 나고 시에 이전하는 것을 전제로 이곳에 최근 10년간 매년 100억 엔에 해당하는 경제진흥책이 시행됐다”며 “일본 전체가 대불황을 맞은 상황에서 기지 이전은 나고 시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전체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마부쿠로 시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일미관계를 위해서라도 13년 전에 양국 정부가 합의한 이전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일본 안보에 관한 문제를 소도시에 불과한 나고 시 주민에게 맡기지 말고 중앙 정부가 빨리 결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1996년 일미 합의 이후 13년 동안 세 차례의 시장 선거에서 기지 이전에 찬성하는 후보가 모두 당선됐는데 내년 1월에 치러지는 4번째 선거에서도 쟁점이 될 만큼 중앙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기지 퇴출 약속 지켜라”
이전 반대 시장후보



“후텐마 비행장이 이곳으로 옮겨온다면 주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음과 오염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내년 1월에 치러지는 나고 시장 선거에 후텐마 이전 반대파 단일후보로 출마하는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64·사진) 씨는 2일 인터뷰 도중 후텐마 얘기가 나오자 주먹을 불끈 쥐면서 “기노완 시민들에게 위험하기 때문에 옮겨야 하는 후텐마 기지가 나고 시로 온다면 이곳 시민들 또한 똑같이 위험해지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나미네 후보는 “기지를 오키나와 현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한 민주당을 믿고 주민들이 총선에서 연립여당 후보를 당선시켜줬으니 정부는 빨리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후텐마 기지를 이곳으로 옮기기로 한 미일 정부의 기존 합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미일관계가 나빠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그건 일본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 현 밖으로의 이전은 왜 안 되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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