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요 대통령 “내년 하원 출마”… 比정국 소용돌이

  • 동아일보

장기집권 사전 포석일까
면책특권 유지 꼼수일까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62·사진)이 내년 치러질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을 공식 선언하면서 필리핀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은 1일 고향인 팜팡가 주 제2선거구 출마를 위한 후보 등록을 마쳤다고 외신이 전했다.

필리핀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하원의원직에 도전하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전날 “공직에 더 머물라는 지지자의 뜻을 받들기로 했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필리핀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를 6년 단임(연임 금지)으로 정하고 있어 그의 임기는 내년 5월 상하원 및 지방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로 끝난다.

필리핀 야당과 가톨릭계는 즉각 “야욕을 드러낸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분석하는 아로요 대통령의 출마 의도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하원의원이 된 뒤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는 헌법 개정을 추진해 자신이 총리로서 계속 집권하겠다는 뜻이다. 둘째, 대통령 면책특권 덕에 야당이 제기하는 독직(瀆職) 및 수뢰 혐의로 기소되는 상황을 피한 그가 의원으로서 면책특권을 유지하려는 속셈이라는 것.

이에 아로요 대통령은 “의원내각제 개헌 주장은 ‘가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가톨릭주교회 측은 “권력에 중독된 그는 당선되자마자 개헌을 시도할 것”이라며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 측은 기소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원은 의회 내에서 한 발언에 대해서만 면책특권이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야당의 프란시스 팡길리난 상원의원은 “공직에 있어야 자신을 보호하기가 더 유리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부통령이던 2001년 군부의 지원을 업은 무혈 대중시위로 조지프 에스트라다 당시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2004년 대선에서 선거 조작 파문 끝에 당선됐지만 이후 그의 지지율은 1986년 쫓겨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이래 가장 낮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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