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방미때 텐트캠핑 ‘없던 일로’

  • 입력 2009년 8월 31일 02시 59분


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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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암기 테러범 석방 여론악화
美당국 종용에 계획 철회

‘그 넓은 미국 땅에 텐트 칠 곳이 없다는 말인가.’

다음 달 23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사진)가 뉴욕 인근 리비아 정부 소유 땅에서 캠핑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미-리비아 관계 정상화 이래 처음인 카다피의 방미가 확정되자 리비아 정부는 그가 캠핑할 곳을 물색하느라 분주했다. 카다피는 베두인족의 전통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외국 방문 때 냉난방 시설을 갖춘 천막을 설치해 숙소 겸 접견실로 사용한다. 러시아 방문 때는 크렘린 궁전 정원에, 이탈리아 로마에선 시내 공원에 천막을 설치했다.

이번에 리비아 정부는 센트럴파크를 점찍었지만 시 당국이 거절했다. 유엔본부 정원은 공사 중이다. 그러자 리비아 정부는 1982년 대사관저 용도로 구입한 뉴저지 주 엥글우드의 2만여 m² 땅에 텐트를 설치키로 하고 잔디 정리에 나섰다.

그러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인구 3만 명의 엥글우드는 유대인들이 특히 많이 산다. 리비아 소유 땅 바로 옆은 탈무드 학원이다. 1988년 팬암 항공기 폭파테러 희생자 유족도 반발했다. 유족들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관용’으로 20일 석방돼 리비아로 돌아간 이 사건 테러범이 영웅 대접을 받은 데 격분해 있다.

주민들이 대대적인 시위 계획을 세우자 미 국무부는 토지 매매 계약서에 있는 ‘대사 및 가족용으로 용도를 제한한다’는 규정을 들이대며 캠핑 계획 철회를 종용했다. 역사적인 첫 방미가 구설수에 오르는 걸 원치 않은 리비아 정부도 이에 응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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