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외로이 태극기를 그린다

  • 입력 2009년 8월 14일 02시 55분


안중근 의사의 종질부인 안노길 할머니(왼쪽)가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자택에서 최선옥 수녀와 함께 앉아 회한에 잠겨 있다. 뒤로는 안 의사의 사진과 안 할머니가 손수 수놓아 만든 태극기가 보인다. 하얼빈=구자룡 특파원
안중근 의사의 종질부인 안노길 할머니(왼쪽)가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자택에서 최선옥 수녀와 함께 앉아 회한에 잠겨 있다. 뒤로는 안 의사의 사진과 안 할머니가 손수 수놓아 만든 태극기가 보인다. 하얼빈=구자룡 특파원
안중근 의사 조카며느리 96세 안노길 할머니를 아십니까
남편도 일제에 희생
“安의사 공적 인정하라”
1958년 시위 벌이다 체포
中감옥서 40년 노역
낡은 아파트서 쓸쓸한 노년
“하얼빈역에 가보고 싶어”

안중근 의사가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하얼빈 의거 100주년(10월 26일)을 맞아 기념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안 의사의 종질부가 중국에서 안 의사의 독립운동과 태극기를 널리 알렸다는 이유로 40년 동안 옥살이 등 자유를 박탈당한 사실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안 의사의 사촌 동생인 홍근 씨의 3남 무생 씨와 결혼한 안노길 할머니(96). 그는 헤이룽장 성 하얼빈 시 난강 구 안산 가의 허름한 한 아파트의 4층에서 그를 돌보는 한국에서 온 수녀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13일 기자가 찾은 안 할머니의 아파트 방 벽에는 안 의사의 젊었을 때 사진과 안 할머니가 그린 태극기, 그리고 부모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장롱 속에는 안 의사에 관한 책과 수를 놓은 태극기가 가득 있었다. 2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 다소 거동이 불편하지만 소일삼아 태극기를 그린다고 안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최선옥 수녀(72)는 말했다.

안 할머니는 “당숙(안 의사)이 우리 동포를 살리려고 도둑질하러 온 그 흉적을 없앴어”라고 말했다. 안 할머니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씨 가문의 일원으로 안 의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혼신을 바친 것에 긍지를 가진다”고 말했다. 요즘은 거동이 불편해 안 의사 거사 장면이 역사(驛舍) 바닥에 표시된 하얼빈역을 가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2000년 하얼빈에 우연히 왔다가 안 할머니를 알고 2005년부터는 아예 하얼빈에서 양로원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최 수녀. 그는 “안 의사 집안을 널리 알리고 태극기를 흔들다가 40년 이상 자유를 박탈당하고 살았는데 전혀 돌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 당국자는 “현재로선 안 할머니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고 안 의사 집안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직계가족의 독립운동 기록이 확인되지 않으면 유공자 유족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얼빈=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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