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20년…‘불신의 벽’ 여전히 높다

  • 입력 2009년 8월 7일 02시 59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는 독일은 요즘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장벽이 서 있던 자리를 따라 약 160km 구간에 걸쳐 ‘베를린 장벽의 흔적’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도로가 건설되고 있다. 또 베를린 시내 중심부 알렉산더광장에서는 5월부터 베를린 장벽 붕괴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는 ‘평화적인 혁명’전이 열리고 있다. 독일역사박물관, 베를린영화박물관 등 박물관들도 20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특별전시회를 연다.》

하지만 속으로는 옛 동-서독 지역 간에 정치·경제·사회적인 분열이 여전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독일이 완전한 통합을 이루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아 보인다.

○ 동독 지역에 만연한 박탈감

옛 동독 집권당이었던 독일사회주의통합당(SED)을 계승한 좌파당의 지지도를 보면 동-서독 지역 주민들의 정치 성향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다음 달 27일 총선을 앞두고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좌파당의 지지도는 서독 지역에서는 6.5%에 불과했지만 동독 지역에서는 26%로 4배나 높았다. 정치·사회학자들은 통일 독일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의 정치의식은 지난 세대와 다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별 차이가 없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여론조사업체인 인프라테스트-디마프의 리하르트 힐머 사무국장은 “18∼24세 청년층의 정당 지지도를 살펴보면 전통적인 동-서독 주민 간의 차이가 그대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독일 정치분석가인 만프레트 길리너 씨는 “동독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뭔가 불이익을 받고 있으며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박탈감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이런 생각이 정당 지지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독일 최대 자선단체인 ‘민중연대’가 지난달 옛 동독 지역 주민 192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독일의 통합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3%는 “동-서독 간 분열이 여전히 크다”고 답했다. 또 8%는 “분열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반면 “차별이 거의 없다”거나 “동-서독이 함께 발전하고 있다”는 답변은 18%였다.

○ 경제적 차이로 분열 더 심해져

동독 지역 주민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는 동-서독 지역 간 경제적 격차 때문이다. 지난달 말 서독 지역의 실업률은 7%이지만 동독 지역은 12.9%였다. 동독 지역 주민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의 71% 선이다. 이는 동독 지역 기업들이 통일 이후에도 경쟁력을 높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동독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있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이 4일 전했다. 작센 주의 도시 호이에르스베르다는 동독 시절 갈탄을 이용하는 화력발전소가 건설되고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동독 산업의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9년 통일 당시 주민은 6만7881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통일 직후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 화력발전소가 폐쇄되고 다른 산업도 발전하지 못하면서 이 도시의 인구는 3만9214명으로 줄었다.

인구 감소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호이에르스베르다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라 스토츠너 씨(20·여)는 “동독 시절에는 ‘평등’ 이념을 바탕으로 충분한 사회복지가 제공됐다”며 “우리의 부모 세대는 동독에서 일자리를 보장받고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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