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차이메리카 견제 ‘절반의 성공’

  • 입력 2009년 5월 22일 02시 56분


中-러-韓과 잇단 정상회의… 국제 영향력 확대 모색
中과 회담선 끌려 다니고 원총리 훈계에 체면 구겨

“중국과 미국만으로는 안 된다. 글로벌 외교무대의 균형은 우리가 잡는다.”

최근 유럽 외교관들은 이런 발언을 자주 한다. 신흥 강대국인 중국과 기존 강대국인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양분할 것이라는 ‘차이메리카(chimerica)’ 혹은 ‘G2’ 체제를 경계하는 발언이다.

유럽연합(EU)이 국제무대에서 ‘제3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일 열린 중국과의 정상회의에 이어 21일 러시아, 23일 한국과의 잇단 정상회의는 EU의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 중-EU 정상회의, 절반의 성공

이번 EU-중 정상회의는 중국이 지난해 12월로 예정됐던 회의를 일방적으로 연기한 뒤 5개월 만에 성사됐다. 중국은 당시 순회 의장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면담했다는 이유로 정상회의를 취소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의는 양측 관계 회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올해 상반기 의장국인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세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전략적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는 원칙에 합의했다. 중국은 두 지역의 경제교류 확대를 위해 조만간 EU에 상품구매단을 추가 파견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외신들은 “EU가 주도권을 잡기는커녕 중국에 끌려 다녔다”는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EU가 △무역불균형 해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지적재산권 보호 △인권 등 중국을 상대로 벼른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이나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중국이 나서라는 요구 역시 명쾌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EU는 대신 중국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원 총리는 정상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EU는 상호 존중의 원칙을 지키고 서로 국내 문제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EU는 중국 상품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고, 개도국을 상대로 환경문제 대응에 필요한 (기술, 자금)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앞으로는 달라질 것”

이번 정상회의에서 체면을 구겼지만 EU는 장기적으로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중국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EU가 연간 2480억 유로어치의 중국 제품을 수입하는 중국의 최대 시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일랜드 한 국가의 비준만 남겨놓고 있는 ‘리스본 조약’이 최종 시행되면 ‘EU 외교부’ 창설을 통해 외교안보 권한이 크게 강화된다. 지난해 12월엔 유럽연합군이 소말리아 해적 퇴치에 나서는 등 EU 차원의 독자적인 군사대응도 시작됐다.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EU 내부의 결속력 자체가 약해졌고, 가스와 석유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러시아를 상대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된다. EU는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에 소극적이어서 미국으로부터 “글로벌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는 데 인색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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