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군인도 인권法 적용…병사의 치료-관리 우선 돼야”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열사병에 아들 잃은 英어머니 승소

전쟁터의 군인에게는 인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영국 국방부가 고수해 오던 이 논리를 한 전사자의 어머니가 오랜 법정싸움 끝에 뒤집었다.

이라크 바스라에 파병된 영국인 병사 제이슨 스미스 씨(당시 32세)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때는 2003년. 에어컨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기온이 섭씨 50∼60도를 넘나드는 병실에서 숨 막히는 더위를 호소하다가 결국 숨졌다. 군에서는 가족에게 “체중 등 평소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고 사인을 설명했다. 이를 납득할 수 없었던 어머니 캐서린 스미스 씨는 당시 구체적 의료기록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녀는 검시관의 도움을 받아 당시 아들이 처했던 상황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2006년 “내 아들이 부실한 의료장비와 시설, 잘못된 의료진의 판단 때문에 죽음을 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캐서린 씨 측은 “병사의 치료와 관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갖추지 않은 것은 유럽인권협약 등에 규정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방부는 “영국의 통제영역을 벗어나는 전쟁터에서는 군인에게 인권 관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정부가 군인들의 생명과 인권 보호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이 사건을 맡은 항소법원의 앤서니 클라크 재판장은 19일 “군인도 어떤 상황에서든 기본 인권을 보호받아야 하는 인권법 적용 대상”이라며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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