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여사, 3차 연금해제 2주 남기고 수감

  • 입력 2009년 5월 15일 02시 56분


미국인 존 예토 씨가 스스로 촬영한 상반신 사진과 오리발을 착용한 모습. 그는 3일 밤 아웅산 수치 여사 집에 잠입해 여사를 만나고 나오다 체포됐다. 양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인 존 예토 씨가 스스로 촬영한 상반신 사진과 오리발을 착용한 모습. 그는 3일 밤 아웅산 수치 여사 집에 잠입해 여사를 만나고 나오다 체포됐다. 양곤=로이터 연합뉴스
자택잠입 미국인 접촉 이유 정치범수용소 이송

“미얀마 군정, 내년 총선 앞두고 발묶기” 분석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64)가 자택에 잠입한 미국인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14일 체포돼 재판을 받게 됐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수치 여사는 이날 오전 가정부 2명과 함께 경찰에 체포돼 미얀마 수도 양곤 근처 정치범 수용소인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됐다. 변호인인 흘라 미오 민트 변호사는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 규정을 어겨 국가안전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며 “3∼5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치 여사에 대한 재판은 18일 시작된다.

이에 앞서 미국인 존 예토 씨(53)는 2일 미얀마에 입국한 뒤 이튿날 밤 양곤 호숫가의 수치 여사 자택에 헤엄쳐 잠입해 이틀 동안 머문 뒤 몰래 빠져나왔다가 국가안전법 및 입국규정 위반으로 체포됐다. 그가 수치 여사를 만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예토 씨를 만난 주미얀마 미국대사관 관계자는 “종교적 이유에서 이런 행동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수치 여사 측 변호인은 “수치 여사가 그를 불러들인 것이 아니다. 그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몇 번이나 요구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총선(내년)을 앞두고 미얀마에서 정치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1990년 5월 실시된 총선에서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민족동맹(NLD)이 495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자 군정은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미얀마 군정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 장군은 수치 여사를 연금하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정권을 잡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BBC도 “미얀마 군정이 내년 총선 때까지 수치 여사를 감금하기 위한 사전작업인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미얀마 민주화운동 단체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를 위한 캠페인’의 아웅 딘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은 수치 여사의 연금 상태를 연장하려는 군정의 교활한 계획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수치 여사가 1988년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이후 군정은 가택연금과 해제를 반복하고 있으며 연금 기간은 총 13년을 넘었다. 군정은 2003년 5월 수치 여사를 세 번째 가택연금한 뒤 해마다 이를 연장해 왔으며 27일 가택연금이 해제될 예정이었다. 유엔인권위원회(UNHRC)는 미얀마 군정은 가택연금 기간을 최장 5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자국법 조항마저 어기고 수치 여사를 계속 연금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국제사회는 일제히 미얀마 군정을 비난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미얀마 군정은 수치 여사의 연금을 연장할 구차한 핑계거리를 찾고 있다”며 “수치 여사가 구금된 채 총선이 실시된다면 정의롭지 못한 일이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수치 여사가 재판을 받는다는 게 사실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도쿄의 미얀마대사관 앞에서는 60여 명의 미얀마 출신 망명자가 ‘수치 여사에게 자유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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