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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9일 03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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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지난달 25일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도심 밀로시 가(街). 외교부 청사 맞은편에는 폭격으로 한가운데가 무너져 내린 군사령부와 국방부 건물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인종청소를 자행했다가 1999년 3월 24일부터 79일간에 걸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의 공습을 받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장면 2 이틀 뒤인 27일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 이곳에선 ‘영웅’으로 불리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빌 클린턴 가에는 차량과 인파가 넘쳤다. 시내 곳곳은 도로 확장공사 등 건설 붐으로 활력이 넘쳤다. 코소보는 인종 구성상 알바니아계가 92%를 차지하면서도 세르비아 영토 내 자치주로 남아 인종학살과 억압을 당하다 1999년 유엔 평화유지군이 점령한 뒤 올해 2월 17일엔 독립을 선언하고 지난달 15일 헌법을 공식 발효했다.》
○ 아직 갈 길이 먼 코소보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의 안보환경은 NATO의 공습 이래 10년 가까이 지나면서 급변했다. 특히 올해 코소보의 독립선언을 계기로 그동안 잠정상태에 머물던 안보지형의 변화가 그대로 정착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코소보가 갈 길은 아직 멀다.
당장 코소보의 독립선언 인정 여부가 현재진행형이다. 친(親)서방 개혁과 유럽연합(EU) 가입을 내세우는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5월 총선 이후 ‘친유럽 연정’을 구성해 민족주의 세력을 눌렀지만 그 역시 코소보 독립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코소보의 행정권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코소보의 독립선언 후 유엔은 코소보임시행정처(UNMIK)가 가진 행정권을 EU의 법치임무단(EULEX)에 넘기려 했다. 그러나 세르비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승인 없이는 EULEX로 행정권을 이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보 비스코비치 베오그라드대 정치학 교수는 “코소보 독립은 민족주의 의식이 강한 세르비아의 국가정체성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며 “코소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나 키프로스 문제처럼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밀란 파예비치 국제안보센터 소장은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도 사실상 코소보를 포기했다”며 “이젠 코소보 논란을 떠나 EU와의 협력을 통한 실질적인 생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소수 의견일 뿐이다.
○ 발칸반도 평화의 주축인 NATO
지난달 20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EU연구센터의 교수진과 함께 벨기에 수도 브뤼셀 NATO 본부를 방문했다. 슈테파니 바프스트 NATO 대변인은 “사실 힌두쿠시 산맥(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의 남쪽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이란으로 뻗은 산맥)과 유럽 안보가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는 말로 NATO가 전략변화 과정에서 부닥쳤던 어려움을 설명했다.
NATO가 코소보 다국적군(Kosovo Force) 참여는 물론 2003년부터 아프간 국제안보지원군(ISAF)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일부 회원국 사이에서 집단안전보장이라는 NATO 출범 당시의 기본정신과는 어긋난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안보 여건이 지역을 넘어 사이버, 환경, 에너지 분야로 확대되면서 NATO의 전략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바프스트 대변인은 “이제 동맹은 냉전 때처럼 적의 탱크가 쳐들어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위기가 발생하거나 발생 전이라도 달려가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NATO가 회원국도 아닌 코소보에서 치안유지활동을 하는 것도 이런 전략 변화를 반영한다. 코소보 독립을 통한 발칸반도 문제의 해결에는 아직도 장애물이 적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과거처럼 대규모 전쟁이나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
EULEX의 상부 기관인 코소보 국제민간대표(ICR) 사무소의 앤디 맥거피 대변인은 “코소보 독립이 궤도에 오르면 발칸 반도에선 과거와 같은 심각한 갈등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면 한미동맹에도 큰 변화가 요구될 것”이라며 “NATO가 전략적 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역할을 찾은 것처럼 한미동맹도 전략적 환경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오그라드·프리슈티나·브뤼셀=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