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송평인]英佛獨, 1공영+多민영의 조화

  • 입력 2008년 3월 20일 03시 02분


유럽에 있다 보니 ‘공영방송이 좋다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해볼 때가 자주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독일 ZDF를 비롯해 여러 유럽 국가의 공영방송을 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ZDF는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 3번 연주를 실황 중계했다.

유럽인들이 여름 휴가철에 가장 찾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가 루체른이다. 풍광이 워낙 아름답기도 하지만 매년 여름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여름 바캉스와 음악의 결합만큼 환상적인 것도 없다.

특히 아바도는 2003년 이후 매년 말러 교향곡 한 곡씩을 연주하면서 전곡 연주에 나서 음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시간이 없어, 돈이 없어 루체른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ZDF를 통해 듣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황 연주는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싹 잊게 했다.

물론 이런 연주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즐겨 볼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모두가 보지는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좋은 프로그램임에는 틀림없다.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은 이처럼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고 시청자의 교양이나 정보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아닐까.

프로그램이 끝날 때 내려오는 자막을 보니 일본 NHK도 함께 중계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유럽의 저녁 시간은 한국의 새벽 시간이어서 시간대가 맞지 않아 보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에서도 NHK를 통해 이 공연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NHK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도 매년 생중계해 왔다. 한국에 있을 때도 새해가 되면 NHK를 통해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볼 수 있었다.

한국은 KBS, MBC 등 공영방송이 2개나 돼 각 지역의 1개 상업방송을 압도하는 구조다. 그런데도 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과 유럽이 가진 방송 구조의 차이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유럽 선진국은 2개의 공영방송을 두지 않는다. 영국에는 BBC가 있고 프랑스에는 ‘프랑스 텔레비지옹’이 있다. 물론 독일에는 ZDF 외에 ARD라는 공영방송이 있다. 그러나 독일은 우리나라와 달리 주(州)의 권한이 큰 연방국가다. ZDF만 독일 전역을 상대로 하고 ARD는 9개 지방방송의 연합체적 성격을 띠고 있어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유럽 공영방송의 시청률은 한국 공영방송처럼 상업방송을 압도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ITV나 스카이방송 같은 상업방송의 시청률이 거의 BBC를 따라잡았다. 프랑스에는 프랑스 텔레비지옹에 속한 프랑스2, 프랑스3보다 민영방송인 TF1 하나의 시청률이 더 높다. 독일의 경우도 재미있다고 말하는 프로그램은 RTL, 자트아인(Sat.1), 프로지벤(Pro Sieben) 같은 상업방송에서 방영한다. 일본도 단일 공영방송인 NHK가 있고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다수의 상업방송이 있다.

국가가 하나인데 공영방송이 2개나 되고 그 공영방송끼리 시청률 경쟁을 벌이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못하다.

공영방송 하나에 중형 소형 규모의 다수 상업방송이 경쟁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유럽과 일본의 표준이다. 미국처럼 공영방송의 비중이 미미하고 민영방송이 압도하는 시스템도 있다. 미국식이든 유럽식이든 일본식이든 우리와는 차이가 크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방송의 선진화를 뜻하는지는 명확하다.

송평인 파리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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