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사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9일 퇴임 의사를 밝히면서 반세기에 걸친 카스트로 집권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의 퇴임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돼 온 일이었고 쿠바 정부가 오랫동안 권력 이양에 대비해 왔기 때문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카스트로 의장은 퇴임 성명에서 “이것은 작별 인사가 아니다. 나의 유일한 소망은 사상의 전투에서 한 명의 병사로서 싸우는 것”이라며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고 이는 여러분이 의지할 수 있는 또 다른 무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6년 7월 장출혈 수술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관영매체 기고문으로 국정 운영에 대한 견해를 밝혔고 TV 화면으로만 근황을 공개해 왔다. 지난달 20일 쿠바 의회 선거에서 카스트로 의장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이 형보다 1.1%포인트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자 외신들은 이를 카스트로 의장의 은퇴 및 권력 이양의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그의 퇴임에 미국은 즉각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카스트로의 퇴임이 민주적 전환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며 “국제사회는 쿠바 국민이 민주주의에 필요한 제도들을 정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미국은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의 후계자로는 1997년 공산당대회에서 그가 정치적 후계자로 지목한 라울 국방장관이 유력하다. 형에 비해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소박한 유머감각과 경제적 실용주의 노선으로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그러나 라울 장관의 나이(77세)를 고려할 때 그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가 과도기적으로 운영된 뒤 40대 초반의 펠리페 페레스 로케 외교장관과 50대 중반의 카를로스 라헤 부통령이 본격적으로 부상하는 세대교체가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와 손잡고 혁명… 세계 최장기 집권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1926년 쿠바 동쪽 끝 올긴 주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태어났다. 영재라고 소문났던 그는 열두 살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10달러짜리 지폐를 본 적이 없는데 제가 볼 수 있게 보내 줄 수 있나요. 당신의 친구 피델 카스트로’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의 친구를 자임했던 소년은 그 후 일생을 반미 투쟁에 바치게 된다. 카스트로 의장은 1950년 아바나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뒤 1953년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몬카다 병영 습격에 참가했다. 이후 멕시코로 망명한 그는 1956년 12월 81명의 동지와 함께 어선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에 비밀리에 상륙해 오리엔테 주 시에라마에스트라 산에서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체 게바라와 손잡고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린 카스트로는 그해 총리로 취임했고 토지개혁과 외국 자본을 몰수하는 사회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제1차 아바나 선언으로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을 제창했고 1961년에는 미국과의 국교를 단절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가 638회에 이른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06년 7월 장출혈로 쓰러진 그는 친동생이자 공식 후계자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에게 임시로 권력을 이양한 뒤 신병치료에 전념해 왔다. 카스트로 의장은 49년간 쿠바를 통치해 왔다. 이는 현존하는 세계 지도자 중 최장기 집권 기록이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무려 10명의 대통령이 백악관을 거쳐 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