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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5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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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 아버지 부시는 3위 불구 백악관 입성
미국 민주당에서는 1976년 이후 8번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 중 6명이 대선 후보가 됐다. 공화당에서도 8명 중 6명이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양 당 모두 아이오와에서 선두를 차지한 인물의 ‘대선후보 적중률’이 75%에 달하는 셈.
1976년 미국 정치무대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민주당 지미 카터 전 조지아 주지사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하며 돌풍을 일으킨 뒤 대선 후보로 선출돼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는 아이오와 코커스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열세를 딛고 대선 후보로 선출돼 대통령에 오른 사례도 적지 않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공화당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2위, 1988년 조지 부시 부통령은 3위였지만 각각 열세를 극복하고 대통령이 됐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남편이자 1992년 대선의 승자였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당시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아이오와 주가 미국 대선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72년 1월 24일 민주당이 첫 코커스를 아이오와에서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공화당도 1976년부터 아이오와에서 민주당과 같은 날에 첫 코커스를 열면서 아이오와 코커스는 미국 대선 전체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고 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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