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vs 反美’ 유엔총회장의 결투

  • 입력 2007년 9월 27일 02시 59분


25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유엔본부 유엔총회장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반미(反美) 국가 정상들의 설전장이 됐다.

이날 시작된 각국 대표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과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이란, 니카라과 정상이 정면충돌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먼저 오전 연설에서 포문을 열었다. 그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등의 인권 탄압에 침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쿠바에 대해선 “잔혹한 독재자의 장기 통치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건강이 악화된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거론했다.

이에 쿠바 대표로 참석했던 펠리페 페레스 로게 외교장관은 총회장에서 퇴장해 버렸다. 유엔 주재 쿠바대표부는 성명을 통해 “부시 대통령은 60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 살해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 연설이 시작되자마자 ‘듣고 싶지 않다’며 동시통역이 제공되는 이어폰을 빼버렸다.

남미의 대표적 반미 국가인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쿠바 지원에 나섰다.

그는 “카스트로는 대단한 인류애를 보여 준 지도자”라고 평가한 뒤 “전 세계가 ‘북미 제국’이라는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절대권력하에 있다”고 미국을 맹비난했다.

오후에 연설에 나선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연설은 반미 연설의 백미를 장식했다.

그는 “미국이 비밀감옥 설치와 적법 절차가 없는 재판 및 도청을 통해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타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한 부시 대통령을 역공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란의 핵 문제에 대해서도 아예 “이 문제는 이미 종결됐다”고 선언했다. 그는 “오만한 강대국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란 핵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가 연설하는 동안 미국 대표단은 기록 요원만 남긴 채 자리를 비웠다.

이에 앞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란의 핵무장은 인근 지역은 물론 전 세계의 안정에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을 ‘악마’로 지칭했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바쁜 국내 일정’을 이유로 올해 유엔총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자국 TV와의 회견을 통해 “미국을 방문 중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 제국에 맞서 싸운 그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고 밝혔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뉴스메이커 아마디네자드▼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특히 그의 24일 컬럼비아대 강연은 대규모 반대 시위, 리 볼린저 컬럼비아대 총장과의 가시 돋친 설전 등으로 이날 저녁 미국 TV 방송의 주요 뉴스를 장식했다. 다음 날 뉴욕타임스는 1면 톱기사로 이를 보도했다.

볼린저 총장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소개하면서 면전에서 “그는 비열하고 잔인한 독재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특히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에 대한 부정은 그가 뻔뻔스러운 도발자이거나 아니면 놀라울 정도로 무식한 사람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나치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했다는 주장은 하나의 이론이며 좀 더 토론하고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문일답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처벌 등 이란의 인권 상황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란에는 당신 나라와는 달리 동성애자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청중의 야유를 받기도 했다.

그는 ‘이란이 테러를 지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테러를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이며,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위선자”라고 역공했다.

컬럼비아대 주변에는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수백 명의 시위대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 정치권 일각에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이란 대통령에게 선전장을 제공한 컬럼비아대에 연방정부 지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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