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임현주씨 육성공개 의도는

  • 입력 2007년 7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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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납치한 탈레반이 26일 여성 인질 한 명의 목소리를 공개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인질의 육성 공개는 국민의 감성을 자극해 인질 구출에 대한 여론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억류 중인 임현주 씨는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구해 달라”고 여러 차례 애절하게 요청했다.

▽협상력 극대화 카드=탈레반이 26일 CBS방송과 아프가니스탄 파지와크통신에 인질의 목소리를 내보낸 것은 다른 인질 석방 협상 과정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육성 공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인질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해 인질이 소속된 국가의 국민을 감성적으로 자극하곤 한다. 이런 감성효과는 실제로 한국 정부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탈레반으로서는 한국 정부를 조급하게 만들어 탈레반 죄수를 풀어주는 데 주저하는 아프간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인질 억류에 대한 비난을 전가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인질의 고통이 공개되면 인질범의 무자비한 행위보다는 아프간 정부나 한국 정부 등이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아서 인질 석방이 늦어지는 것처럼 부각시킬 수가 있다.

목소리 공개 시점 선택도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이날 오전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대통령 특사로 아프간에 급파한다는 소식 이후에 나온 육성 공개는 한국 정부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도 보인다.

탈레반은 임현주 씨가 “그들은 돈을 원해요”라고 말하는 대목을 현지어인 다리어로 표현하게 한 것은 자신들의 요구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탈레반의 요구가 상황에 따라 ‘한국군 철수→탈레반 죄수 석방→돈’으로 바뀌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아프간 내외를 향한 전방위 메시지=탈레반이 인질 가운데 임 씨를 육성 공개의 대상으로 선정한 것도 따지고 보면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한국 국민은 물론이고 아프간 정부와 지역 주민을 향해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는 뜻이다. 특히 미국 방송을 활용함으로써 전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를 노렸다.

이들은 아프간 내부를 향해서는 자신들의 세력 건재 및 회복을 과시했다.

탈레반은 인질 육성 공개를 통해 2001년 10월 미국의 아프간 공격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졌지만(11월) 약 6년 만에 재기에 성공해 남부 지방 등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음을 아프간 국민에게 널리 알린 셈이다.

동시에 한국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탈레반이 아프간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체임을 인정받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들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재를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가장 대표적인 육성 공개의 이유는 ‘인질을 방패’로 한 그들의 안전 확보다. 인질이 살아 있음을 확인시킴으로써 아프간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섣부른 군사작전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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