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 석방” 희망 → “1명 피살” 충격 → “시신 발견” 절망

  • 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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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국방-외교장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오른쪽)과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피랍사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25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국방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원건  기자
심각한 국방-외교장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오른쪽)과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피랍사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25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국방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원건 기자
“피랍 한국인 8명 석방.” 25일 오후 9시경 정부 소식통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 무장세력 간의 협상 결과 한국인 인질 가운데 8명이 일단 석방됐다고 전했다. 몇 시간 전부터 예고됐던 낭보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뜻밖의 소식이 터져 나왔다. “한국인 인질 1명 살해.” 지켜보던 국민은 순간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9시 50분경에는 “탈레반이 마지막 협상 시한을 제시했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나머지 인질도 살해할 것”이라는 비보가 전해졌다. 이어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던 8명의 석방 사실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가 몇 시간 뒤 또다시 8명이 풀려나 미군 기지로 이송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혼란이 극에 달했다.

혼란은 이미 오후 4시경부터 시작됐다. 희비가 엇갈린 긴급 뉴스가 아프간으로부터 잇따라 전해지면서 관계자들은 계속 천당과 지옥을 오가야만 했다.

“협상에 진전이 없다. 한국인 인질 중 일부를 죽일 것이다.”(오후 4시 18분·AFP통신).

“탈레반, 인질 석방 협상 실패 선언.”(오후 5시 55분경·AIP).

“아프간 정부, 한국인 인질 몸값 지불.”(오후 6시 50분경·교도통신).

▽긴박한 살해 경고=이날 오후 4시 18분 AFP통신은 긴급 뉴스를 타전했다. 탈레반 수감자 8명을 석방하지 않으면 이날 오후 2시(한국 시간 오후 6시 30분)까지 한국인 인질 몇 명을 살해하겠다는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의 경고였다. 아마디는 AFP에 전화를 걸어 “데드라인은 이미 지났다. 협상에 진전이 없다면 인질 일부를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다.

살해 경고 시간까지는 2시간 10여 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날 오전까지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 마음을 어느 정도 놓고 있던 피랍자 가족들과 국내 관계자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부가 발언의 배경 파악에 몰두하던 5시 55분경 새로운 소식이 외신을 통해 날아들었다. 발신지는 이번 피랍 사건 동안 탈레반 측의 움직임을 한발 앞서 보도해 온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

AIP는 아마디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은 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해 협상 실패를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살해 경고 시간까지는 이제 불과 35분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 하지만 이때까지도 아프간 정부 측은 여전히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협상단의 키알 무하마드 후세인 씨는 “탈레반과 통화를 했는데 그 같은 신호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암울함이 석방의 희망으로=협상이 물 건너 간 건 아닌지, 정말 인질을 살해하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커져 갔다. 탈레반이 살해하겠다고 제시한 시한인 6시 30분도 어느새 지났다. 이제나 저제나 뉴스를 기다리는 동안 6시 50분경 도쿄발로 희망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교도통신은 아프간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측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했으며 수감 중인 탈레반 요원 8명의 석방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수감자 석방에 소극적이던 아프간 정부가 석방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내용. 한국으로선 더 바랄 게 없는 희소식이었다.

나아가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 당국자는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을 살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이 제시한 시한 몇 분 전에 몸값을 지불했다”고까지 말했다. 인질 살해 위협이 고조됨에 따라 아프간 정부가 ‘몸값+탈레반 수감자 석방’이라는 최상의 협상 카드를 제시했고 이 카드 덕택에 인질이 일부분이나마 자유를 되찾게 된 것으로 해석됐다.

이어 오후 9시경 한층 구체적인 희소식이 나왔다. 한국인 8명이 곧 석방된다는 정부 소식통의 발언이었다. 이어 ‘안전한 곳으로 이동 중’ ‘가즈니 주 인근 미군 부대로 이동 중’이라는 반가운 뉴스가 몇 분 간격으로 속속 이어졌다.

▽밤새 탄식-안도 오락가락=8명 석방을 시작으로 피랍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희망이 싹트는 동안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인 1명이 살해당했다는 비보였다. 조금 전까지도 인질 8명 석방 소식에 환호를 보내던 국민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탈레반 측이 협상의 주도권을 더 틀어쥐기 위해 허위 정보를 흘린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탈레반은 앞서 억류하고 있던 독일인 2명 가운데 1명만 숨졌는데도 모두 살해했다고 거짓 주장을 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신을 통해 “아프간 당국자가 한국인 인질 1명이 병사했다고 말했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의 한국인 인질 살해를 확인했다” “숨진 인질은 남성이다” 등 인질의 사망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속속 날아들었다. 탈레반의 아마디 대변인은 AIP와의 통화에서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을 속이려 했기 때문에 한국인 인질 가운데 1명을 오후 4시 15분(한국 시간 8시 45분)에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탈레반 측은 26일 오전 5시 30분을 새로운 협상 마감 시한으로 제시하고 이때까지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인질 몇 명을 더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런 와중에 석방된 것으로 알려진 8명에 대해서도 ‘확실치 않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아프간 정부 협상단의 수석대표는 AFP통신에 “아프간 정부는 8명의 석방 소식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고, 오후 11시 29분경에는 아마디 대변인이 “아무도 석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26일 오전 1시 35분경 AP통신이 서방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여자 6명, 남자 2명이 석방돼 가즈니 주에 있는 미군 기지로 이송됐다”고 전해 앞선 보도를 뒤집었다.

이날 하루 엎치락뒤치락하며 마치 ‘진실게임’을 하듯 숨 가쁘게 이어진 긴박한 상황은 26일 새벽까지 계속됐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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