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우차오’ 70주년…中, 정부차원 日규탄행사 안열어

  • 입력 2007년 7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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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은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 발발 70주년.

중국에서는 으레 해 오던 정부 차원의 대규모 일본 규탄 행사는 열리지 않고 대신 관련 기념관이나 단체의 소규모 행사만 열렸다.

이날 베이징 서남쪽 펑타이(풍臺) 구 루거우차오 현장에 있는 기념관에서는 1000여 명의 노병과 학자, 학생이 모여 기념식을 열었다.

선양(瀋陽)에서는 30여 명이 모여 루거우차오 사건 좌담회를 했으며 구이린(桂林)의 기념관에서는 관련 전람회가 열리는 등 전국 10여 개 도시에서 기념식이나 관련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예년에 비하면 이는 아주 작은 규모다. 또 중앙 정부는 물론 베이징 시 역시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를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전체 시민이 일제히 차를 멈추고 종을 울리는 등 요란한 기념행사를 했던 난징(南京)에서는 올해는 군위안부 2명이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베이징항공항천(航空航天)대 안전전략연구센터의 왕샹쑤이(王湘穗) 교수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최근 중국의 대일 전략이 묻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칭화(淸華)대 국제문제연구소 류장융(劉江永) 교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공개적인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도 일본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를 압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날 대만에서도 야당인 국민당은 행사를 열고 “7·7항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독립된 대만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집권당인 민진당과 대만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벌이지 않았다.

1937년 7월 7일 밤 루거우차오 부근에서 훈련 중이던 일본군이 몇 발의 총소리와 함께 사병 한 명이 행방불명되자 이를 기화로 중국군을 총공격해 루거우차오를 점령한 사건. 이 사병은 용변을 보다 대오에서 이탈했으며 20분 뒤 복귀했다. 하지만 루거우차오 사건은 양국 간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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