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 대립으로 조명 받고 콧노래 부르는 푸틴

  • 입력 2007년 6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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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냉전시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서방과 대립하면서 흥행 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과 러시아의 반대는 7일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의 최대 하이라이트로 떠올랐다.

유럽 언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각국 정상들의 연쇄 회담을 추적하며 러시아의 반응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미국이 동유럽에서 MD 계획을 강행하면 러시아의 미사일이 유럽을 겨냥할 수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으로 긴장이 한껏 고조됐기 때문이다.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대립 각 세우기 효과는 G8 회담장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일각에선 핵전쟁의 암울한 시나리오까지 나돌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MD기지가 들어설 체코와 폴란드에서는 MD 반대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시민 상당수는 미-러 갈등 때문에 ‘강대국의 미사일 인질’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도 미국의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러시아는 서방과의 대치 구도로 형사 사건을 국제 정치 분쟁으로 몰고 가는 데도 성과를 거두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전직 러시아 정보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씨 독살 사건은 순수한 형사 사건”이라며 살해 의혹을 받고 있는 안드레이 루고보이 씨를 추방하라고 요구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일축했다.

이 같은 서방과의 대립 구도는 러시아 내부에서 비판 세력 잠재우기와 지지세력 결집에 효과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영국 공영방송 BBC가 보도했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비판세력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수사 당국은 지난주 크렘린에 비판적인 평론을 내놓은 정치평론가 블라디미르 프리빌롭스키 씨의 집을 수색해 컴퓨터와 원고 초안을 압수했다. 당국은 그가 ‘국가 이익을 해치는 글을 쓸지 모른다’는 혐의를 제기한 것만으로도 과잉 수색이라는 비난을 비켜갈 수 있었다.

내년 3월 대권에 도전한 전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 씨 등 러시아 야권 인사들에 대한 경찰서 임의동행과 야당의 집회도 여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런 조치들도 서방과의 대치 효과 덕을 봤다는 게 서방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유럽과 러시아의 대치가 설전(舌戰)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가 늘고 있다. 아나톨리 츠가노크 모스크바 정치군사연구소장은 “러시아가 9월 동해에서 미 해군과 공동으로 연합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며 “러시아가 경제 군사 분야에서 서방과의 협력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가 서방에 대해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완전히 등을 돌리기는 어렵다는 점이 냉전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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