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1차 특검’이 성과 내면 ‘2차 특검’ 하는 건가

  • 동아일보

정원수 부국장
정원수 부국장
내란 재판에서 공개된 가장 결정적 증거 중 하나는 계엄 선포 직전 열린, 이른바 ‘하자 있는 국무회의’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의 거짓말이 CCTV로 드러났다. 이 파일을 확보한 건 특검이 아닌 경찰이었다. 계엄 직후부터 올 4월까지 경찰이 경호처에 증거보존 공문을 집요하게 보냈고, 경호처가 윤석열 전 대통령 몰래 영상을 백업했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 뒤 이 파일이 3급 비밀에서 해제되면서 특검이 법정에서 공개할 수 있었다. 수사권 관할 문제로 경찰이 내란 의혹을 주로 수사한 건 아니지만 경찰의 수사력을 과소평가할 순 없다.

‘국무회의 CCTV’ 확보한 警 과소평가

내란 특검을 포함한 김건희, 채 상병 등 이른바 ‘3대 특검’은 수사 기한이 끝나면 미진한 부분이나 후속 수사가 요구되는 사안을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이첩해야 한다. 기존에는 ‘특별 검사’의 수사 뒤 ‘일반 검찰’에 넘겼지만 직접 수사권이 곧 폐지될 검찰에 사건이 가지 않도록 3대 특검부터 법을 바꿨다. 그런데 여당은 경찰의 추가 수사가 아닌 ‘2차 종합 특검’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 대표는 얼마 전 “새해 1호 법안은 (2차) 종합 특검이 돼야 한다”라고 했다. 경찰이 어떤 수사 성과를 냈느냐에 관계없이, 수사에서 다시 손을 떼야 하는 난감한 상황인 셈이다.

6개월 가까운 특검 수사에도 정권 차원의 김건희 수사 무마, 한남동 관저 이전 등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많다. 이런 것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꼭 특검을 통해야만 할까. 무엇보다 특검 재추진의 명분부터 상식적이지 않다. 여당이 제출한 2차 종합 특검 법안의 제안 이유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3대 특검은 법정 수사 기간 소기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검 수사의 결과가 기대치에 한참 모자라서 추가 특검이 필요하다면 몰라도, 성과를 크게 거둬서 특검이 또 필요하다는 논리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런 식이면 2차 특검이 성과를 내면 3차, 4차 특검도 할 건가.

상식적으로 특검의 성과가 클수록 후속 특검이 출범한다고 하더라도 수사할 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2차 특검 법안은 내란 특검 관련 4건, 김건희 특검 관련 6건, 채 상병 특검 관련 1건 등 3대 특검의 자투리 의혹들을 모두 묶어서 수사 항목이 11가지다. 내란·외환 진상 규명, 대통령 부부의 재직 중 비리, 채 상병 관련 군 지휘부의 구명 로비 등 범죄의 성격이 다른데 하나의 특검에 모두 욱여 넣은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특검의 활동 기간은 최대 170일까지 늘어난다.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접근할 수는 없나.

‘정부 권한 침해’ 특검, 與 추진은 비정상

특검은 행정부의 수사기관들이 공정성과 중립성을 의심받을 때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의회의 수사기관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특검을 ‘행정부 권한을 뺏어 먹는 굶주린 늑대’로 부른다고 한다. 특검을 하게 되면 당연히 행정부 내 수사기관들의 의욕이 꺾이고, 특검 장기화는 기존 수사기관의 역량까지 해칠 수 있다. 야당이 아닌 여당의 특검 의존이 비정상적인 이유다.

더구나 수사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개혁 과제로 삼고 있는 정부라면, 특검 추진은 더 신중해야 한다. 2차 종합 특검법이 통과된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특검 수사가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내년 10월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 새 시스템이 가동되기 전에 경찰 등을 점검할 수 있는 기간이 크게 단축된다. 형사사법 시스템의 오류는 1%만 있더라도 전체에 흠집이 날 수 있다. 임기가 4년 6개월 남은 정부 여당이라면 그 과제의 수행을 평가받을 순간까지 장기적 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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