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만 아는 ‘神의 은행원’ 살인범

  • 입력 2007년 6월 8일 03시 02분


코멘트
1982년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된 ‘신의 은행가’ 로베르토 칼비 전 암브로시아노 은행 총재. AFP 자료 사진
1982년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된 ‘신의 은행가’ 로베르토 칼비 전 암브로시아노 은행 총재. AFP 자료 사진
1982년 6월 영국 런던 템스 강 블랙프리어스 다리.

최고급 양복과 이탈리아제 수제화를 신은 60대 남성이 목 맨 시체로 발견됐다. 호주머니에는 현금 1만5000달러가 들어 있었다.

신원을 조사한 결과 로베르토 칼비 전 이탈리아 암브로시아노 은행장으로 밝혀졌다. 그는 바티칸과의 친분 덕에 ‘신의 은행원(God's Banker)’으로 불리던 이탈리아 금융계 최고 거물이었다. 사건 발생 후 25년 동안 유럽에서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했고 그의 죽음은 ‘20세기 최고 범죄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혀 왔다.

7일 로마법원 재판부는 칼비 전 은행장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마피아 조직원 등 5명의 선고공판에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는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 ‘코사 노스트라’의 회계담당자 피포 칼로, 칼비의 운전사, 그리고 동료 사업가들이었다.

사건 초기 런던 경찰은 칼비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암브로시아노 파산 후 부패 혐의로 기소되자 런던으로 비밀리에 도망쳤다가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조사 결과였다.

그러나 2002년 가족들의 끈질긴 요구로 부검을 실시한 결과 칼비가 목이 졸려 살해된 후 다리로 옮겨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이탈리아 정가와 마피아, 바티칸을 모두 아우르는 칼비의 극비 커넥션이 속속 밝혀지면서 타살로 무게중심이 옮겨졌고 재수사가 진행됐다.

2005년 10월, 드디어 이탈리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칼비 살해사건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 측은 마피아의 돈세탁 업무를 담당한 칼비가 마피아 일부 자금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패혐의를 벗기 위해 마피아의 비밀을 폭로하려고 했으며 이를 두려워한 칼로가 살해를 지시했고 칼비의 운전사와 동료 사업가들이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마피아인 칼로뿐만 아니라 나머지 피고인도 칼비 전 행장을 살해했다고 여길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탈리아 검찰은 아직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항소를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AP, 로이터통신, BBC방송 등 주요 외신은 칼비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정계 실력자들과 바티칸이 검찰에 항소 포기 압력을 넣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칼비는 이탈리아 정계 및 재계 종교계의 일부 지도층 인사가 회원으로 있는 전 세계적인 기독교 비밀결사단체 프리메이슨의 돈세탁도 담당했으며 바티칸과 마피아가 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칼비 가족에게 고용돼 처음부터 이 사건을 조사해 온 제프 카츠 씨는 “사건의 정점에는 이탈리아 정치 종교 기득권층이 자리 잡고 있다”면서 “무죄 판결이 났으니 칼비의 살인범을 찾는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라고 말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