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 사이에 널리 퍼진 신화가 있다.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보다 더 건강한 술이라는 믿음이다. 한때는 적당히만 마시면 심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와 맞물리며, 레드 와인은 몸에 좋은 술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레드 와인에 포함된 폴리페놀이라는 성분이 핵심이다. 레드 와인은 껍질과 알맹이를 함께 발효하기 때문에 항산화·항염 작용을 하는 식물성 화합물인 폴리페놀 함량이 더 높다. 반면 화이트 와인은 대개 껍질을 제거하고 발효한다.
레드 와인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에는 프로시아니딘, 플라보노이드, 레스베라트롤 등이 있다. 붉은 색을 만드는 안토시아닌도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레스베라트롤은 실험실 연구에서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고 세포 자살을 유도하며, 암 전이를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성분들의 건강 개선 효과는 와인 몇 잔으로 얻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높은 농도에서 관찰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령 매일 레드 와인 두 잔을 마셔도 체중 1kg당 레스베라톨 섭취량은 약 27㎍(마이크로는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부분 체내에서 활성화하지 않는다.
레스베라톨을 충분히 섭취해 암 예방 효과를 보려면 간이 심하게 망가질 정도로 레드 와인을 들이부어야 한다. 잠재적인 항암 효과를 보기도 전에 간이 망가져 죽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의 에릭 림 교수는 “레드 와인 속 폴리페놀 농도는 매우 낮아서, 실제로 의미 있는 효과를 보려면 적정 음주량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많이 마셔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림 교수는 대신 블루베리 같은 진한 색 베리류, 사과, 양파, 녹차, 홍차, 다크 초콜릿 등에서 안토시아닌을 섭취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조언했다.
미국 브라운 대학교 연구진이 작년 국제학술지 영양소(Nutrients)에 발표한 메타 분석에 따르면, 레드 와인은 화이트 와인과 비교해 암을 예방하는 이점이 없었다.
해당 연구는 레드 와인이 건강에 더 좋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을 명확히 보여줬다.
게다가 레드 와인은 두통이나 알레르기 유사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단점도 있다. 레드 와인으로 인한 두통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붉은색 껍질에 풍부한 탄닌,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히스타민, 그리고 포도에 들어 있는 항산화 물질인 케르세틴이 관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존력을 높이기 위해 첨가하는 아황산염 역시 일부 민감한 사람에게 증상을 유발할 수 있으나, 두통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근거는 제한적이다.
한 연구에서는 와인 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이 화이트 와인보다 레드 와인을 마신 뒤 코막힘, 가려움, 얼굴 홍조, 위장 불편 같은 알레르기 유사 증상을 더 자주 겪었다고 보고했다.
와인은 수천 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한 식문화의 일부다. 하지만 통념과는 달리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잇따라 확인됐다.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이 다른 알코올 음료보다 더 건강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똑같이 몸에 해로운 술이라는 얘기다.
세계 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IARC)는 알코올을 1군 발암 물질로 분류했다.
최근 알코올에 관한 연구들은 ‘한 방울의 알코올 섭취조차 암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알코올은 일부 암 외에 인지장애, 치매, 심장 질환, 수면 장애와도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점점 더 많이 쌓이고 있다.
결국 건강을 위해서는 어떤 술을 마시느냐보다 얼마나 어떻게 마시느냐가 더 중요하다. 최선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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