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권력의 몰락[이은화의 미술시간]〈404〉

  • 동아일보

권력은 종종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낳는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벨사자의 향연’(1636∼1638년·사진)은 그 착각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성경 속 왕의 몰락을 다루고 있지만, 모든 시대의 권력자를 향한 냉정한 경고문이기도 하다.

그림 중앙, 황금 망토를 걸치고 거대한 터번 위에 왕관을 쓴 인물은 바빌론의 왕 벨사자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신성한 그릇을 술잔 삼아 방탕한 잔치를 벌이고 있다. 탐욕이 신성을 모독하는 순간, 번개 같은 빛과 함께 먹구름 속에서 손이 나타나 벽면에 히브리어를 새긴다. “메네, 메네, 데켈, 우바르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왕은 몸을 돌리다 술잔을 엎지르고, 공포에 휩싸인 신하들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선다. 렘브란트는 인물들을 화면 가득 배치해 감상자마저 이 밀실의 공포에 갇힌 목격자로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글자의 배치다. 당시 현자 중 누구도 이 문장을 읽지 못했다. 본래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지만, 그림 속 문장은 위에서 아래로 배열돼 있다. 이를 통해 렘브란트는 권력 곁에서 지혜를 뽐내던 자들이 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눈먼 존재인지를 꼬집는다. 진실은 늘 눈앞에 존재하지만, 오만에 가려진 눈은 그것을 읽어낼 능력이 없다.

결국 예언자 다니엘이 나타나 글자의 의미를 밝혀낸다. “너를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신의 선고였다. 심판은 지체되지 않았다. 벨사자는 그날 밤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암스테르담 시민들은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교회보다는 가정집 거실에 걸린 그림을 통해, 이 장면이 전하는 경고를 날마다 되새겼을 것이다. 하늘은 늘 지켜보고 있으며, 권력은 언제든 심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권력의 몰락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도덕적 붕괴에서 시작된다는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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