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지면서도 전력질주 널 보며 시름을 달랬단다”

  • 입력 2006년 10월 5일 03시 06분


코멘트
113연패의 기록을 보유한 일본의 경주마 ‘하루우라라’(사진)가 은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4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소유주가 10월 1일자로 경주마 등록을 말소한 사실이 알려진 것.

하루우라라는 2004년 8월 이후 레이스에 출전하지 않아 결국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채 현장을 떠나게 됐다.

일본 고치(高知) 현 고치경마장의 ‘스타’였던 하루우라라는 올해 열 살인 암컷 경주마. 이름 하루우라라는 ‘화창한 봄날’이란 뜻이다.

1998년 11월 데뷔전에서 꼴찌를 한 이래 경주가 있으면 항상 열심히 달렸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 고단한 삶에 지친 일본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다. 매번 지면서도 성실하게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 공감을 얻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였다.

1996년 홋카이도(北海道)에서 태어난 하루우라라는 애초에 경주마로서는 불리한 체격 조건이었다. 발목이 가늘어 몸집이 작을 수밖에 없었고 폐활량도 떨어졌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우승 가능성이 ‘제로’인 하루우라라를 위해 기꺼이 마권을 사 줬다.

2003년 12월 하루우라라가 100연패를 기록하던 날은 전국에서 5000명이 넘는 관중이 그를 응원하러 고치경마장으로 몰려들었다. 100여 명의 취재진도 달려왔다.

2004년 3월에는 유명 기수가 그를 타고 달리는 경기가 기획돼 마권을 전국에서 발매하자 5억 엔어치 이상이 팔려나갔다.

이 행사로 하루우라라는 경영난에 허덕이던 고치경마장을 구원해 내 ‘고치의 여신’으로 불렸다. 물론 이날도 하루우라라는 10등을 했다.

세상사가 모조리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피곤한 시대에, 지더라도 꾀부리지 않고 성실히 달리는 그의 모습에서 일본인들은 ‘다음에는 이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배우고 위안을 얻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내 인생과 똑같다”며 훈련하는 하루우라라의 모습을 보기 위해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었다.

하루우라라의 소유주인 안자이 미호코(安西美穗子) 씨는 “하루우라라의 나이를 볼 때 이제 부활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경주마로서는 이기지 못하고 끝나지만 앞으로 뭔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다른 일을 찾아 승리하게 하고 싶다”며 여전히 ‘희망’을 얘기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