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과거 만행 숨기기… 침묵할 순 없었다”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11년째 파킨슨병과 싸우면서도 13일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일본의 군위안부 결의문 통과에 앞장선 레인 에번스 의원. 동아일보 자료 사진
11년째 파킨슨병과 싸우면서도 13일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일본의 군위안부 결의문 통과에 앞장선 레인 에번스 의원. 동아일보 자료 사진
위안부 할머니들 “日범죄 인정한 美결의문 환영”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3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군위안부 동원 관련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결의문은 “위안부의 비극은 20세기 최대 인신매매의 하나”라며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배상 논의 등을 촉구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14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는 즉각 결의문을 수용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할머니들 “日범죄 인정한 美결의문 환영”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3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군위안부 동원 관련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결의문은 “위안부의 비극은 20세기 최대 인신매매의 하나”라며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배상 논의 등을 촉구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14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는 즉각 결의문을 수용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반대 의견이 없으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으로 하겠습니다.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13일 오전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관련 결의문 통과를 선언했다. 2001년과 2005년 두 차례 상정 실패 뒤 이뤄진 결실이었다.

결의문을 주도한 민주당 레인 에번스(55) 하원의원은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파킨슨병 악화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 그에게 이번 결의문은 사실상 마지막 발의 안건. 힘겹게 의자에 기댄 채 감격에 젖어 있는 그에게 동료 의원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이 결의문은 구속력이 없지만 일본군위안부 이슈를 외면해 온 일본을 압박하는 외교적 힘을 지녔다.

에번스 의원은 이 문제에 가장 열성적으로 매달려 온 미국의 지한파 정치인으로 꼽힌다. 조지타운대 법대 졸업 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적이 있는 그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외에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보상, 혼혈인의 시민권 인정 등 약자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해 왔다. 그는 “소방관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8년 같은 일리노이 주 출신의 윌리엄 루핀스키 의원과 함께 일본 정부에 2차대전 피해자의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문 작업을 하면서부터.

그는 “인권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미 의회가 또다시 일본의 과거 만행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이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의 전방위 방해 로비에 맞서 동료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서명 동참을 촉구했고, 각 주의 한인연합회와 함께 여론의 지지를 호소했다. 한인 사회의 서명운동과 캠페인 등이 뒤를 받쳤다.

결국 6년 만에 나온 세 번째 일본군위안부 결의문은 에번스 의원과 공화당 크리스토퍼 스미스 의원이 공동 발의해 초당적으로 진행됐다. 하원 국제관계위 소속 의원 11명을 비롯해 하원 의원 52명이 서명했다.

에번스 의원은 11월에 은퇴할 예정. 1995년부터 시작된 병마는 31세에 처음 당선돼 무려 12선이던 그의 정치활동의 발목을 잡았다.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열정을 쏟은 그를 위해 워싱턴 한인회 등 한인단체들은 29일 송별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美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일본군위안부 결의문 요약▼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제국일본육군이 ‘위안부(comfort women)’로 알려진 젊은 여성들을 오로지 성 노역 목적으로 직간접적으로 예속화하고 일부는 납치하도록 허용했다. 위안부 비극은 20세기 최대 인신매매의 하나였다. 위안부의 노예화는 일본 정부에 의해 공식 위임되고 조직화됐으며, 윤간, 강제 낙태, 성적 폭력, 인신매매가 수반됐다.

이에 따라 미 하원은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일본 정부는 △여성의 성 노예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모호하지 않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끔찍한 범죄에 관해 현재와 미래 세대를 교육해야 한다 △위안부 예속화, 노예화가 없었다는 주장을 널리, 강력하게, 되풀이해 배척해야 한다 △위안부를 위한 어떤 형태의 배상조치가 필요하고 적절한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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