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 교수 “한미동맹 최악 상태… 회복 어려울 것”

  • 입력 2006년 8월 3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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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거론되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그는 해외 출장을 앞둔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상세한 e메일 인터뷰와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 현대사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거론되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그는 해외 출장을 앞둔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상세한 e메일 인터뷰와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전시 작전통제권 논란,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 대북 정책 갈등,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 미국과 북한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 사회 이념갈등의 근저에는 한국현대사에서 미국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뿌리깊은 인식의 차이가 놓여 있다.

한미동맹이 한국사회 번영의 주춧돌이 됐다는 시각에 맞서 한쪽에선 분단과 전쟁 등 한국 현대사 비극의 주된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90년대 들어선 전교조 등을 통해 중고교 교육현장에 까지도 널리 확산되어온 그 같은 좌파적 현대사 해석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학자는 브루스 커밍스(63)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다.

1970년대 그가 쓴 논문들이 80년대 초 한국사회에 하나둘 번역되다 1986년 10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한국전쟁의 기원 Ⅰ'이 미국에서 출판된지 5년만에 국내에 완역, 출판돼 젊은이들이 6·25전쟁을 보는 시각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그후 20년. 커밍스 교수는 지금의 한미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소련 붕괴후 공개된 비밀문서들이 낱낱이 증명하는 북한과 소련의 6·25전쟁 책임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커밍스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해외 출장을 앞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기자가 보낸 e메일 질문서에 상세한 답변을 보내왔으며 추가로 지난주말 전화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상세히 보완 설명했다.

-현재의 한미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미 동맹은 1950년 이래 최악의 상태다. 기본적 원인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북한 정책에 있다. 그러나 워싱턴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급진주의자이며 따라서 동맹관계 악화의 모든 책임이 노 대통령에게 있다는 견해가 민주 공화 구분 없이 있는게 사실이다.(물론 나는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다해도 동맹관계가 가장 좋았던 때처럼 회복되는건 어려울거라고 본다."

-한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움직임은 시기적절하다고 보는가.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시기가 좋지 않다고 본다. 첫째 그 같은 변화는 1970년대나 80년대에 이뤄졌어야 한다. 또 한가지 이유는 한국에서 반(反) 부시 감정이 고조된 시기에 이런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주한미군을 합리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복잡해졌다. 1949년 이래 미국은 북한을 봉쇄하고 남한을 자제시킴으로써 내전을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이런게 너무 일상화돼서 미군 관계자들은 서울이 왜 변화를 원하는지 그 이유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올 5월 한 컨퍼런스에서 미군 관계자들이 '한국인들이 작전권의 변화를 원한다'며 비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한미연합사 해체 등 앞으로의 동북아 안보환경을 예상한다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징벌적(즉 노무현 정권을 벌주려고) 차원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하는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펜타곤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길 원한다. 따라서 미군이 완전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매우 상황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아베 신조는 '낡은 사상을 갖고 있는 민족주의자'(unreconstructed nationalist)다. 그의 집권하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럼즈펠드 장관과 체니 부통령은 일본이 재무장하길 바란다. 미국의 목표는 동북아를 냉전시대의 경계선으로 다시 나누는 것이고 그들은 일본과 함께 이를 잘 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매우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미군이 계속 한국에 주둔해도 좋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는데….

"남북한 모두가 동의한다는 전제조건하에서만 찬성한다. 만약 남북 모두 동의하는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미군이 남쪽에 계속 주둔하면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미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 한국내에선 FTA가 빈부격차 심화를 가져오고 한국경제가 미국에 더 종속될 것이라며 반대 시위가 거세다.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상치되는 복잡한 문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미국내에서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많은 미국의 블루칼러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세계화는 값싼 노동력을 찾으려한다. 따라서 미국과 한국의 블루칼러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미국은 상위 10%가 42%의 소득을 차지하는 매우 양극화된 사회라는 점을 한국인들은 이해해야 한다. 한국은 아마도 미국보다는 더 평등주의적인 사회다. 물론 나는 FTA 반대시위를 지지한다."

-한국에선 6·25 전쟁때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사상자도 적고 쉽게 통일 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만약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했다면 그는 한국을 지금의 평양 정권과 마찬가지로 매우 민족주의적인 독재국가로 바꿔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병영국가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엔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길을 걸었을 수 있을 것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을 민족의 원수, 전쟁의 원흉으로 규정하는 주장도 있다.

"비밀해제된 문건들을 연구한 미국 학자들 가운데 맥아더가 한국전쟁 전이나 전쟁기간에 미국의 정책을 주도했다고 보는 역사가는 없다. 1950년 8월 북한으로의 진격을 결정한 것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장관이었다. 양민학살의 책임에 관해 말한다면 맥아더가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 인종적 편견을 가진 나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학살사건들은 그가 일본 점령군 사령관으로 있을때 일어난 것이다. 그가 그런 걸 명령하지는 않았다. 양민학살은 한국 전역에서 일어났으며 대부분은 지역적 이유와 지역 사령관들, 그들이 미국인이건 남한인이건 북한인이건 간에 그런 차원에서 자행됐다. 우리는 김일성이 양민학살을 중단하라고 (부하들에게) 말했음을 보여주는 비밀문서를 갖고 있다."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동상 철거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지워버리거나 숨기는 대신 그것을 보며 배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많은 나이든 세대들이 맥아더를 영웅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고 그들의 견해를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맥아더가 한국인을 위한 영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패배시킨 주역이며 일본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20세기 위대한 미국인 가운데 한명이지만, 19세기에 태어났다면 더 맞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시킨 애치슨 라인이 남침을 유도했다는 해석이 팽배했는데….

"1950년 1월 당시 딘 애치슨 국무장관의 연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전미신문기자협회에서 발언했는데 발언내용이 기록되지 않았다. 그런데 뉴욕타임스가 일요일자 리뷰에서 애치슨라인에 한국이 포함된 것으로 잘못 보도했다. 북한의 노동신문도 뉴욕타임스를 베낀 러시아 신문을 보고 애치슨 라인에 한국도 포함된다고 전했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 나도 놀랐다."

-어쨌든 당시 미 행정부가 애치슨 라인을 통해 남침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이 문제는 매우 미묘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애치슨 장관은 한국 대만 베트남 태국 이란 유럽 등을 걱정하면서도 수세적 입장에서 방어 포지션을 구축하려 했다. 그것은 이해할만하다. 국무장관이 모두에게 완전한 안전보장을 약속해줄 수는 없었다. 애치슨 장관이 북한의 침공을 유도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극도로 가능성이 희박한 해석이다. '한국전쟁의 기원 Ⅰ'권이 나온후 비밀해제된 문건들을 보니까 내가 당초 예상했던 것 보다 스탈린이 훨씬 더 깊이 개입해 있었다. 영국 정보기관에서 나온 문건에 따르면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미국은 한국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현대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굴욕의 역사로 보는 시각과 기적적인 성장을 이룬 자랑스런 시기로 보는 시각이 맞부딪힌다.

"한국인들은 한국이 얼마나 많은걸 이뤘는지에 대해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20세기는 한국에게 가혹했지만 21세기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 인적 자원과 높은 교육수준은 성공으로 가는 티켓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혹독한 압제속에서도 민주화의 승리를 이뤄냈다."

-한국 역사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는 한국 산업화의 최고 통치자(industrial sovereigns)였다. 비스마르크, 헨리 포드, 스탈린 등 산업화를 이끈 다른 경우를 봐도 그들이 다 좋은 사람들인건 아니다. 한국인들이 박정희를 존경하는건 그가 산업화의 통치자였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는 1930년대 만주국에서 군부가 전쟁 관련 산업을 고속 발달시키는 것을 보며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법에 대해 배운 것 같다. 박정희의 방식은 중공업을 키우는데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민주주의를 한 세대 동안 쫓아냈고 많은 노동자와 보통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한국전쟁의 기원Ⅰ'에 인촌 김성수가 일제 때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는 대목이 있어 한국 내 일각에서 이를 인촌 공격에 이용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한국 역사학자들은 처음듣는 주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신의 주장은 확인된 내용인가.

"미군이 갖고 있던 문건에서 본 것을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 책에 실었다. 그 내용은 잘못된 것 같다."

-'한국전쟁의 기원 Ⅰ'을 펴낸후 당신이 많은 부분을 보충하고 고쳤지만 한국의 일각에선 여전히 한국전쟁 비극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주장의 논거로 당신의 책을 인용하며 반미감정을 확산시키고 있는데.

"내용이 긴 책이 갖는 문제는 사람들이 일부만을 인용한다는 점이다. 역사가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수천건의 북한 문서와 비밀 기록들에 접근한 첫 민간인 미국 학자다. 한국전쟁의 기원 Ⅰ, Ⅱ권은 모두 최고의 상을 받았으며, 어떤 미국학자도 내가 '한국전쟁은 북침이다'라고 말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책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선 수정주의의 영향으로 한쪽으로 기운 현대사 인식을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이 발간돼 논쟁이 붙었다.

"그런 분위기는 아주 바람직하다. 20, 30년 전에는 분석적 토론 자체가 불가능했다. 토론을 환영한다.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것이다. 역사는 굳어 있는게 아니다.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그럼에도 한국현대사에 대한 나의 이해가 흔들리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 2월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는 커밍스 교수의 부인인 우정은(미시간대 정치학)교수가 1950년대를 재평가한 논문도 실려 있다. 부부간에 시각이 너무 다른 것 아니냐고 묻자 커밍스 교수는 "아내와는 나 사이엔 산업화의 지도자로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 등을 포함해서 견해가 다른 부분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 토론한다"며 웃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반도 내 미국의 역할을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해 온 진보 학자. 주한미군 철수 및 광주민주화운동 미국 개입설을 주장했으며, 주저인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단독정부 수립에 의한 남북 분단 고착화의 책임이 근본적으로 미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1943년생 △미 컬럼비아대 정치학 박사(1975년·동아시아 전공) △워싱턴대, 노스웨스턴대 교수 지냄, 현재 시카고대 석좌교수 △1981, 1987년 평양 방문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 I·II’(1981, 1990년·사진) ‘한국 현대사’ ‘양지 속의 한국’(1987년) 등 다수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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