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화학에 이어 배터리 산업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제조업의 신성장동력이던 배터리 부진이 장기화되자 정부가 처음으로 생산시설 통폐합 등을 시사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14일 복수의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배터리 업계 임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현재 배터리 시장 환경과 생산량을 감안하면 배터리 3사 체제에 의문이 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3사 체제’가 유지 가능한지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배터리 주요 3사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다. 참석 기업들은 이를 두고 “사실상 한 곳 이상의 배터리 업체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지난해 12월의 경고를 봐야 한다”고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에만 28조 원 규모 배터리계약이 무산됐다.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김 장관은 배터리 업계가 석유화학처럼 흘러가지 않도록 다양한 해결 방안을 강구해 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유율 뚝뚝, 계약 줄취소… K배터리 해법 ‘발등의 불’
정부, 배터리도 구조조정 시사 전기차 캐즘에 한달간 28조 날아가 中업체, 글로벌 영향력 점점 커져 차세대 기술경쟁서도 뒤처질 우려… “정부, 세제혜택등 구조조정 지원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최근 배터리 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배터리 3사 체제’가 유지 가능한지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고 당부한 것에 대해 배터리 업계에선 파장이 일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신성장동력으로 꼽혔던 배터리 사업이 석유화학처럼 구조조정이 필요한 신세가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들도 극심한 수요 ‘보릿고개’에 민간 중심의 자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마땅한 해법이 없어 업계에선 “이러다 선 채로 죽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장관이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할 명분이 부족하다’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시사한 것은 전기차가 단순한 캐즘(신산업의 일시적 수요 부진)을 넘어 구조적 정체로 가고 있다는 진단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 연말에만 28조 원 계약 취소·축소
1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 취소되거나 축소된 계약 규모는 28조 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기차 캐즘으로 인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 결정을 내리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2월 포드(약 9조6000억 원), FBPS(약 3조9000억 원) 등과 맺은 총 13조5000억 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이 해지됐다. 엘앤에프는 테슬라와의 약 3조8000억 원 규모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이 978만 원으로 축소됐고, 포스코퓨처엠은 제너럴모터스(GM)와 체결한 양극재 공급 계약 규모를 13조7696억 원에서 2조8111억 원으로 대폭 줄였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수요 둔화로 추가적인 계약 축소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당분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의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점도 문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기준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중국 제외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7.1%로 집계됐다. 2022년 53.9%로 과반을 지켰던 점유율은 2023년 48.5%, 2024년 43.6%로 떨어진 뒤 결국 40% 아래로 내려앉았다.
국내 업체들은 삼원계(NCM) 배터리를 앞세워 기술 경쟁력을 강조해 왔지만, 저가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대량 생산하는 중국 업체들에 밀려 입지가 좁아졌다. 최근 CATL 등 중국 업체들이 소듐(나트륨) 이온전지 상용화에 나서면서, 차세대 기술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자발적 구조조정 필요”… 해법은 안갯속
국내 업체들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생산을 늘리며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전기차용 배터리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가 모두 주요 그룹의 핵심 계열사라 대규모 투자가 이미 집행된 상황에서 사업 철수나 매각을 결정하기 쉽지 않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구도가 이어지면 중복, 과잉 투자가 쌓여 첨단 산업의 국가 경쟁력이 후퇴할 우려가 있다”며 “정부가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내걸고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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