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베트남전쟁化조짐…이라크 다국적군 철군 도미노

  • 입력 2005년 11월 2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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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두 개의 전선(戰線)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라크에선 연일 격화되는 폭탄공격 속에 정국이 날로 혼미해지는 상황에서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의 ‘철군 러시’까지 예고돼 있는 데다 국내적으론 감군 여론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런 안팎의 시련 속에서 미국 내에선 또다시 소모적인 장기 전쟁의 늪에 빠져 ‘베트남전쟁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목소리는 전쟁 시작 전부터 나왔지만 전쟁 2년 반을 넘기고도 날로 악화되는 이라크 상황은 본격적인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는 양상이다.》

▽다국적군의 철군 러시=미 행정부는 당장 미군 이외에 약 30개국에서 파병된 2만3000명의 다국적군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상당수 국가가 12월 15일 실시되는 이라크 선거 이후 줄줄이 병력 철수나 감축 계획을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3일 현재 2만3000명 수준인 다국적 연합군이 내년 말까지 25% 이상 감축될 것이며 영국까지 병력을 줄이면 절반 이상이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최근 1000명의 감군 계획을 공식화한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는 내년 상반기부터 3000명의 병력을 300명 단위로 단계적 감축할 것이라고 AP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폴란드는 내년 2월부터 1700명의 병력을 3분의 1 이상 줄일 것으로 알려졌고, 우크라이나의 경우 올해 말에 900명의 병력을 철수할 것이라고 AFP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이 밖에도 일본 자위대 550명이 내년 5월 철수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호주도 이라크군 2개 대대에 대한 훈련이 완료되는 내년 중반기에 450명의 병력을 철수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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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 최근 “(이라크에서) 할 일을 다했다”면서 “내년에 병력 철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은 아주 합리적이다”는 말로 병력 감축을 강력 시사했다.

미 행정부도 철군을 주장하는 민주당 측에 대해 “철군 계획은 재앙을 낳는 처방”이 될 것이라고 반격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론 내년 중 6만 명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미 국방부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24일 보도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폭스뉴스에 출연해 “미국은 이라크 주둔 미군의 현재 규모를 너무 오랫동안 유지할 필요는 없다”며 “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아주 빨리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전 여론과 애국 코드=지난달 말 미군 사망자가 2000명을 넘긴 지 한 달도 안돼 추가 사망자가 100명을 넘으면서 국내적으로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여론까지 거세지고 있다. 과거 수렁 속에 빠져 갈팡질팡 했던 베트남전쟁에 대한 저항이 미국 내부에서 촉발됐던 만큼 부시 행정부로선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기관인 해리스 폴이 8∼13일 미국인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년에 대부분의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응답은 63%나 됐다. 이에 비해 이라크가 안정될 때까지 미군을 이라크에 주둔시켜야 한다는 응답은 35%에 그쳤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전쟁 비용은 둘째치고라도 전무후무한 모병 미달 사태도 이를 보여 준다. 미 육군의 모병 실적은 올해 상반기 4개월 연속 목표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 올해 모병 실적은 목표를 약 10%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반전 여론을 돌려 보기 위한 부시 행정부의 거친 반격은 이에 따른 조바심을 입증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딕 체니 부통령이 이라크전쟁 비판세력에 대해 “부패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수정주의자들”이라고 받아치면서 다시 불붙은 ‘말의 전쟁’은 점입가경인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미국 사회 일각에서 부활하고 있는 ‘애국주의 코드’ 강화 주장은 보수파의 경계심을 보여 준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기관지 ‘위클리 스탠더드’는 최근 샌프란시스코 주가 주민투표에서 신병 모집요원의 대학 접근에 반대하는 조례를 통과시킨 데 대해 “미국으로부터 분리(secession)하겠다는 것이냐”며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을 주장했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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