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우향우’…“사회민주주의 고수하다 저성장 고실업”

  • 입력 2005년 10월 1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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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에 반대해 3주 넘게 파업을 벌여온 프랑스 코르시카의 국영 해운업체 SNCM 노동조합이 13일(현지 시간) 파업을 철회했다. SNCM의 파업은 파업 기간 내내 프랑스 언론들이 파업 현장과 정부의 동향을 주시하며 주요 뉴스로 다룰 만큼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에겐 ‘시험대’ 같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SNCM 노조가 파업을 철회함에 따라 드빌팽 총리 정부는 △전기회사를 비롯한 공기업 민영화 △실업 예산 삭감 △해고 절차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개혁 드라이브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 獨-佛 유럽의 변화 주도

같은 날 독일의 ‘대연정’에 참여하는 사회민주당(SPD)은 자당(自黨) 몫의 재무장관에 피어 슈타인브뤼크 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지사를 지명했다. 슈타인브뤼크 주지사는 사민당 내에서도 중도우파적 성향의 개혁 주창자로 유명한 인물. 그는 특히 독일의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우선 해소해야 한다고 주창해 왔다.

사민당이 슈타인브뤼크 주지사를 재무장관에 지명함으로써 앙겔라 메르켈 차기 총리(기독민주연합·CDU)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두 사례에서 보듯 사회민주주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에서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우향우’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전통을 고수하다가는 지속적인 저성장과 만성적인 실업률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두 나라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유럽 지도층은 사회민주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이달 초 “유럽이 사회민주주의 전통을 고수하면 세계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며 변화를 촉구했다. 귄터 페어호이겐 EU 집행위원회 부의장도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고유한 사회 모델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변화는 복지, 노동 정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드빌팽 총리는 취임 100일(9월 1일) 기자회견에서 “근로자들이 실업 혜택을 즐기느라 일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정부 지원으로 사는 것보다 취업하는 것이 더 득이 되는 풍토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 역시 이달 초 “무조건적인 평등주의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10월 말로 예정된 EU 정상회의도 주목 받고 있다. EU 순번 의장을 맡고 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달 말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기업 규제 완화, 복지 예산 축소를 주요 의제로 내놓을 생각이다. 블레어 총리의 제안이 공개되면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을 둘러싼 EU 차원의 논의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EU 회원국이 된 동유럽 국가들도 이미 ‘소득 재분배’보다는 ‘성장 우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젊은층 노조 외면… 쇠락의 길로

“근로시간을 늘린다. 임금 인상은 없다.”(회사)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노조)

“그러면 공장 이전을 심각하게 고려하겠다.”(회사)

“알았다. 고용만 유지해 달라.”(노조)

최근 유럽의 노사 협상 테이블에선 이런 대화가 오가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회사 측이 ‘칼자루’를 쥔 형국이다. 프랑스 노조들은 이달 초 정부의 해고 절차 간소화 방안에 반발해 총파업을 단행했지만 정부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노조의 위세에 눌려 노동시장 유연화를 금기시해 왔던 프랑스에서 이번 조치는 변혁으로 받아들여진다.

강성인 독일의 노조도 급격히 힘을 잃고 있다. 지난해 지멘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노사는 임금 인상 없이 근로시간을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연장했다. 연방공무원 노조도 이달부터 근무시간을 주 38.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노조 가입자가 줄어드는 현상은 유럽 노조의 쇠락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노조가입률은 50%대에서 30%대로 급감했다. 이탈리아는 20년 전 50%대에서 35%대로 추락했고 독일은 35%에서 22%로, 프랑스는 10% 아래로 떨어졌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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