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총선후 미국식 민주주의 반발 확산

  • 입력 2005년 2월 28일 17시 56분


30대 후반의 이라크 여성 지나 알 쿠시타이니 씨는 청바지를 자주 입고 염색을 즐겼다. 여성 인권 운동가인 그를 주변에선 ‘신식 여성’이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최근 바그다드 근처 고속도로가에서 변시체로 발견됐다. 즐겨 입던 서구식 옷 대신 검은색 이슬람 의상이 입혀져 있었다. 생전에 한번도 쓰지 않았던 히잡(여성 이슬람교도가 머리에 쓰는 수건)도 걸쳐져 있었다.

뉴스위크 최신호(7일자)는 이 사건을 사례로 들며 “총선(1월 30일)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서구화된 여성을 표적 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는 서구식 민주화=이라크 총선 당일 투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여성 유권자들의 모습은 단연 외신들의 주요 뉴스였다. “투표하는 이들의 피로 바그다드를 물들이겠다”는 저항세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여성들은 용감하게 투표소로 나왔다.


과도정부도 275명의 제헌의회 의원 가운데 25%를 여성에게 할당해 여권 신장을 제도적으로 지원했다.

장기호(張基浩) 이라크 주재대사는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를 향한 이라크 여성의 갈망이 워낙 커 앞으로 민주화된 이라크에서 여성 활동이 매우 신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0월에 영구 헌법을 확정하고 12월에 새로운 주권독립국을 탄생시킨다는 나머지 정치 일정도 거침이 없다. 미국에 의해 이식된 민주주의는 외형상 착착 진행되고 있다.

▽사회는 신정(神政) 체제=하지만 사회 저변에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이슬람 문화가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여성인권단체 ‘여성을 위한 여성 인터내셔널(WFWI)’의 설립자인 자이나브 살비 씨는 “전통적으로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을 납치하거나 참수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요즘 바그다드 거리에서는 교육받고 직장을 가진 여성들이 테러범들에게 살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테러를 당해 숨진 여성들의 수는 2월에만 바그다드에서 30명, 모술에서 20명을 넘어섰다.

최근 이라크대에서 여학생 비율이 떨어지고 거리에 히잡과 차도르를 착용한 여성이 많아진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

뉴스위크는 이라크 여성의 인권이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시절보다 더 못하다고 분석했다. 후세인 시절에는 적어도 여성의 이혼권, 이혼 후 자녀 양육권, 전문 직업을 가질 권리 등이 보장됐다.

제헌의회에 진출한 여성 의원들도 시아파 정권에서 자칫 ‘거수기’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김경민 교수는 “이라크는 미국식 민주주의 틀을 자국 정치에 짜맞출 게 아니라 종족과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이라크식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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